(방 안에서 황금숲토끼와 오월토끼와 삼월토끼가 차를 마시며 나누는 한담. 모 님의 감상을 보고 나도 한번 해 보고 싶어 만들어 본 좌담회형식 감상) 황금숲토끼(이하 황토): 5월 9일 공연이었지? 근데 왜 지금 와서 감상 좌담 운운이야? 오월토끼(이하 오월): 예나 지금이나 무책임하고 게으르잖아. 휴가 시작되자마자 "해방이다"하고는 달려나가서 사람들 만나 돌아다니다가 인터넷 폐인으로 살았어. 삼월토끼(이하 삼월): 폐인이다! 가덤골! 전쟁이다! 키보드아마존이다! 스뽜르똬아아아아아안!!!!! 황토: 저거 좀 어떻게 안돼? 오월: 어쩌겠어. 저래뵈도 오리지널이라 제일 원초적 감성에 넘치잖아. 맹세컨대 300보고 펑펑 운건 내가 아니라 쟤였다구. 황토: (석연치 않은 태도로 헛기침을 좀 한 다음) 아무튼 이건 말해둬야겠어. 뮤지컬은 정말 재미있었어. 오월: 응 재미있었지. 반주도 멋졌다고 생각해. 근데 난 계속 그 애 생각이 나. 황토: 에? 오월: 애 말야. 그 팔다리 난자당하고 얼굴에 염산부어진 애. 그나마 죽이고 부었으니 다행이야. 황토: 그 애는 스토리를 위한 도구잖아? 오월: (고집스럽게) 뭔소리야, 이건 진짜 사건이었잖아. 애는 죽었어. 리처드와 네이슨이 서로를 사랑했건 구속했건 애는 죽었다구. 황토: 그거야 그렇지. 하지만 그 아이는 아예 인물로 등장도 하지 않잖아. 오월: 바로 그거야. 이 이야기는 철저히 두 사람의 이야기야. 아니, 엄밀히 말하면 한 사람의 재구성이야. 그날 우리가 봤던 B페어가 워낙 그런 건지도 몰라. 리처드가 신인이었던가? 확실히, 네이선쪽이 훨씬 깊이있었어. 무게도 있었고, 살아있는 사람으로서의 질감도 느껴졌어. 황토: 으흠, 그러니까 애가 사라져 버린 건 아닐까? 오월: (귀를 쫑긋) 그게 왜 연결되는 거야? 황토: 그러니까, 이 뮤지컬은 전반적으로 "생존자" 네이선의 이야기야. 그에게 중요했던 건 리처드, 그리고 리처드를 갖는 자기 자신이었어. 범죄도, 살인도, 재판도, 감옥도 결국 리처드를 갖는 과정이었는데, 그것도 결국 "타자"인 리처드를 "가둔다는 것"이 중요한 거잖아. 그러니까 리처드조차도 그에게는 "대상"일 뿐이고, 그러니까 더더욱 "애"라는 것은 그와 나를 연결시켜주는 하나의 고리일 뿐인 거야. 결국 연출의 이유고 뭐고 다 없애고, 그러니까 "애"란 등장할 수 없었고 대사도 있을 수 없었어. 심문관들이 실루엣으로도 등장하지 않았던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오월: 흐음- 그러니까- 황토: 그러니까 애가 없었던 거야. 아이에게는 집중 안 하는 거야. 살인을 했고 아이가 죽었고 그건 실제 사건이지만 이 뮤지컬에서 다루는 것은 좀더 다른 것, "Thril me"라는 문장 자체가 아닐까 싶어. "날 전율시켜줘"는 "타자"에게 하는 "명령"이잖아. 그리고 원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전율이었던 거야. 오월: 어이어이, 사변적이야.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 삼월: 우워어어어어어 스릴이다! 저 오거를 처치해! 정의의 분노! 심판! 아르마게돈의 불꽃이 릴리스 위에 떨어진다아아아악!!!!!!! 황토: 왜 쟤를 참여시킨 거야? 오월: 머리속에서 이드를 존중해야 한다는 쓸데없는 의리감 때문이지. 잠깐 그것좀 집어줘. (사상의 데저트 이글을 건네주는 황토. 받아서 그대로 삼월의 머리에 한방 갈기는 오월.) 오월: 잠시뿐이지만 당분간은 조용할 거야. 자, 얘기를 계속하자구. 황토: 그러니까 결국 이 뮤지컬은 2인극인 듯 하고 실제 주연도 두 명이지만, 가장 엄격하게 무게를 가져야 할 인물은 단 한명, 네이슨인 거지. 이 뮤지컬은 네이슨이 구축한 세계, 그 사람의 말을 따자면 "새장안의 새처럼" 그의 세계 안에 살아남은 리처드와 그와 함께 벌였던 사건의 기록이야. 그런 의미에서 캐스팅은 잘 되었다고 생각해. 오월: 하지만 리처드의 경우, 혹시 우리가 보았던 캐스팅의 리처드가 지나치게 가벼웠던 것은 아니었을까? 전반적으로 경박한 어린애라는 느낌이었잖아. 황토: 실상이 그리 달랐을까? 초인 운운하는 대학 초년생이라면 딱히 수준이 짐작 안 가는 건 아니잖아. 게다가 천재까진 무리라도 수재 소리 들으면서 중3까지 서울대 따논당상 소리 듣던 경험을 생각해 보면 그들이 타자를 어떤 시선으로 봤을지 아주 상상 못할건 또 아닌걸? 오월: 하지만 사실 그래서 A페어 공연이 보고 싶고, 그 점이 아쉬워. 우리가 본 리처드는 분명 나름 흥미로웠어. 그건 틀림없지만 - 진지하고 집착적이었던 네이슨이 "상상하는" 리처드라고 생각해도 저 리처드는 지나치게 첫날밤 옷고름 붙들고 북흐러워서 옷 못 벗겠다고 난리치는 아가씨 같은 데가 있었거든. 네 말대로 그게 네이슨이 상상한 리처드라면, 좀더 강렬하게 지배해 주는 맛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황토: 하지만 리처드가 정말 네이선을 지배한 건 아니잖아? 오월: 아니, 네이슨이 하는 말은 Love me나 Take care of me가 아니잖아. 심지어는 Fuck with me도 아니었어. Thril Me였지. 그리고 극중에서 그만이 그 말을 해. 반면 리처드는 Thril me라고 하지 않아. 황토: 흐음, 계속 말해봐. 그래서? 오월: 날 전율하게 해 줘, 라는 말에는 날 지배해줘, 날 꼼짝못하게 붙들어줘, 날 강력하게-때로는 그것이 강제적으로 보일 정도로-끌고가 줘, 도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화려하고 막나가는 리처드는 네이선에게 그런 환상을 불러일으켰을 거야. 그렇다면 리처드는 네이선에게 "지배자처럼"보였어야 하지 않을까? 황토: 하지만 리처드가 수잖아? 오월: 야. 황토: 내가 여자다 보니까말야, 안기고 싶은 심정은 이해가 가. 근데 안고 싶은 심정은 잘 모르겠어. 오월: 니가 야오이 한두편 썼어? 황토: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야! 아무튼 남자들이 누군가를 "안고 싶다"고 할때, 그것은 단순한 욕구불만 해소 외에도 상대에 대한 소유욕이 들어가 있다고 생각해. 실제 네이선은 그런 소유욕을 분명히 드러냈잖아? 난 네이선이 리처드를 지배하고 싶어했다고 생각해. 오월: 그거 참 문제군. 난 네이선이 리처드에게 지배당하고 싶어했다고 보거든. 황토: 그건 작품이 말하는 반전에서 어긋나지 않아? 오월: 흥, 어차피 대본이 뭘 말하건 배우와 연기가 문제인 거잖아? 삼월: (이마에서 피를 흘리며 깨어나서) 어이, 어이 오월, 황토: (제각기 엽총과 데저트 이글을 장전한다) 뭐? 삼월: 깝치지 마셔. 박건 박히건 소유랑 뭔 상관이 있는데? 그럼 여자는 남자를 소유하려는 욕구 없냐? 황토: 맞는 말이긴 한데- 오월: 어조가 험악하니 퇴장. (발사, 잠시 화연이 자욱한 실내에서 무언가 비명지르는 소리, 도망치는 소리, 뭔가 깨지는 소리가 흘러넘친다.) 황토: 어머, 아직 안 죽었네. (개머리판으로 무언가를 짓이긴다) 오월: 그래봤자 좀있으면 살아나. 이드가 늘 그렇듯이. (차를 한 모금 홀짝인다) 젠장, 피 튀었네. 황토: 정상적인 연애 관계에서도 소유의 문제는 어느정도 갈등상황을 도출하게 돼. "널 갖고싶어"따위의 닭살스러운 대사는 치워버린다 해도, 사소한 문제들이 생기지. 누가 약속을 정하며, 누가 능동적으로 둘 사이를 이끌어가며, 누가 둘이 함께 할때 행동을 결정하는지 말야. 하물며 저 둘은 타인과는 정상적인 관계를 단 한번도 쌓지 못했으니, "소유욕"이 저런 형태로 도출된 거라고도, 생각할 수 있을 거 같아. 오월: 내가 보기에 네이선은 지배당하고 싶어했어. 아니, 그러니까 내가 보기에 그렇다는 거니까 즉각 반론하려 들지 마. 문제는 리처드는 전혀 다른 각도로 그와 함께하고 싶어했어. 줄거리를 보면 리처드에게 네이선이 질질 끌려다니다 막판 반전을 벌인 것 같지만, 난 리처드가 불쌍해. 그는 다만 네이선을 끌고 마구 범죄를 저질러대면서 자신의 수퍼내쳐럴함을 입증하고 싶었을 뿐인데, 갑자기 자기에게 안기고 자길 지배해달라고 떼쓰는 녀석을 마주하게 된 거잖아. 황토: 그러니까, 난 그게 아니라고 얘기하고 싶은 거야. 네이선은 말 그대로 리처드를 자기 옆에 묶어놓고 싶어한 거야. 야오이 뿐 아니라 노멀물에서도 흔한 구도 아닐까? 좀더 단순하게 보여주는 대본을 따라가봐도 괜찮잖아. 그와 함께하고 싶어서 범죄에 끼고, 그를 갖고 싶어서 살인을 하고- 그리고 그를 영원히 묶어놓기 위해 살인 현장에 증거를 남긴 거야. 오월: 난 네이슨이 좀더 사악하다고 생각해. 그가 원한건 Thril me라니깐? 리처드는 생리때가 되면 작은 물건을 훔치는 일부 여자애들마냥 범죄를 일으키고 거기서 스릴을 느꼈지만, 네이선은 리처드가 자기에게 못되게 굴고 멋대로 자길 휘두를 때마다 기쁨을 느꼈을 거라고 생각해. 그가 떠나지 않고 남아서 가학적으로 자길 지배해 주길 바랬는데, 자꾸 떠날 것 같으니 결국 감옥에 가두며 자기도 함께 들어간 거지. 황토: 그거 너무 사상누각적인 생각 아냐? 오월: 난 나름대로 근거를 생각해 봤어. 황토: 뭔데? 오월: 굳이 이를 갈고 있는 리처드에게 자신이 뭘 일부러 저질렀는지 하나 하나 말해주는 부분이. 그는 리처드가 자기를 증오해도 좋았던 거라고 생각해. 다시는 자기에게 안겨주지 않아도 좋았던 게 아닐까? 그의 가학을 위해, 자신이 피학당하기 위해서 말야. 황토: 너 요즘 뭘 읽고 살길래 그런 말을 쉽게 하는 거냐? 오월: 너랑 같은 거. 아무튼 이 선에 대해서는 우리 둘다 합의는 못할 거 같네. 황토: 암튼 한가지만은 합의했다고 생각해. 오월: 뭔데? 황토: B페어 공연 즐거웠다. 하지만 A페어도 보고 싶다, 는 거 말이지. 적어도 그건 합의지? 오월: 그렇지. 그나저나 삼월이 부활하려 드는군. 이번엔 뭘로 할까? 황토: 여기 있어. 니트로글리세린. 오월: 좋아. 간다!!!!!!!!!!!!!!!!! (폭음이 터지고 자욱한 연기 속에 뭔가 찌적거리는 소리가 들리다 조용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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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입니다. 아직도 전 확실한 결론은 못 내리고 있어요. 아무튼 매우 볼만한 뮤지컬이더군요! 아직 못 보신 분 있다면 권해드릴 수 있습니다. 배우를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비교적 작은 극장이 전 정말 좋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