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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이때 독일과 러시아엔 주목하는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는 헷갈리거든. 그리고 다들 까먹기 쉬운 사실은, 히틀러는 독일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오스트리아 인이며, 그의 별명은 죽을 때까지 "그 빌어먹을 오스트리아 하사놈" 이었다. 그래서 오스트리아인들도 나치 문제에서 절대 자유롭지 못하다. 아니,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독일 애들보다 더 할 말이 없다. 그건 나중에 얘기하고(나중에 얘기할 리스트가 길어지는군.....)
독일 애들이 2차대전까지 일으키는 바람에 사람들이 독일만 독일인 지 아는데, 사실 지난번에 얘기했듯 독일 제국이라는 것부터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를 제끼고 지들 멋대로 통일해 버린 거라, 사실상 오스트리아 사람들로서는 꽤 빠직한 사건이었다. 근데 걔들이 왜 빠직하는 건지는 역사를 총체적으로 봐야 나오거든.
신성로마제국이란, 여기서 다 설명하자면 너무 귀찮아서 짜증날 정도로 이리저리 굴러다니던 칭호였다. 딴에 정통성은 샤를마뉴(카를 대제, 카롤루스 대제)에게 두고 있긴 한데, 아무튼 요약하면
1)이놈 저놈 이나라 저나라 이왕조 저왕조 서로 패스하며 갖고 있다가
2)황제 칭호를 쓰던 왕조가 끊기면서 당연히 대박으로 패싸움 벌어진 뒤,
3)강력한 제후간의 선거로 현재의 독일+오스트리아+체코나 폴란드 등지의 부분들이라던가 이런저런 넓은 영토의 제후들을 관리할 사람을 뽑는 형태로 정리되기에 이르른 '나라' 다.
그러니까, 이것을 '나라'라고 부르면 요즘 타입의 강력한 단일정부밑의 중앙체제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상 어깨들 모여있는 데서 반장선거하는거랑 별로 다를 건 없었고, 그 반장 말을 애들이 잘 듣고 싶어하지 않은 것도 별로 다를 건 없었다.(......) 말하자면 왕조시대(반장을 일진회 짱이 했음) 이후 대공위 시대(반장 자리 비었음) 뒤 드디어 반장이 선거에 의해 뽑히는 시대가 왔다는 거다. 돈 많거나 공부 잘하거나 싸움을 잘하는(응?)애들로 후보가 좁혀지는건 당연하다. 그래서 나중에가면 선거후보들도 대략 정리돼서, 비텔스바흐, 룩셈부르크, 합스부르크 가문중에서 주로 뽑히게 된다.
자아, 그러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힘이 점점 세어진다. 엘리자베트 중간에 보면 "다른 나라는 전쟁할지나, 행복한 오스트리아는 결혼할지어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사실 합스부르크가의 결혼정책을 이르는 말이다. 특히 이 결혼 정책을 제일 잘 활용한 것으로 유명한 사람은 막시밀리안 1세인데, 본인부터가 유럽에서 제일 부자 나라에 들어가던 부르고뉴의 (당연히 외동딸인) 마리와 결혼했고, 그녀가 젊어 죽은 뒤에는 스포르차 가문의 딸과 결혼했으며, 금슬 좋았던 첫 부인과의 사이에서 씀풍 씀풍 낳았던 아이들은 죄다 어느나라 공주 왕자들이랑 결혼했다. 리스트 댑따 화려하다. 사실은 그래서 우리가 합스부르크가 어떻게 제국을 건설했다는 잘 모르는 거다. 역사책에서는 전쟁으로 건설된 제국에 대해서는 한 장을 할애해 주지만, 결혼으로 건설된 제국에 대해서는 한줄로 요약하는 법이거든. 난 후자가 더 좋은데 말이다.
예를 하나 들어 보자. 아마도 기억하는 사람은 기억할 것이다. 스페인 왕국은 까스띠야와 아라곤의 통합으로 첫발을 딛었으며, 까스띠야 여왕인 이사벨라와 아라곤 왕인 페르디난트의 결혼이 그 기원이다. 그런데 이 두 부부의 무남독녀 외동딸 후안나에 대해서는 알고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간단히 말해서, 후안나는 막시밀리안의 아들인 미남왕 필리프에게 시집갔다. 이 얼마나 쌈박한가. 그래서 결론만 말하자면, 막시밀리안의 손주인 카를5세는 전 유럽 대부분을 지배하는 군주가 되어버린 것이다. 일부 일처제의 나라에서는 왕손이 끊어질 위험이 높은 대신, 이렇듯 잘만하면 대박을 건질 수 있다는 로또의 산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자, 이렇게 살아있는 로또가 된 카를 5세는 19세의 나이에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되는데, 이 얘기는 걔가 프랑스를 뺀 사실상 유럽 본토의 주인이 된다는 거였다. 이 때의 신성로마제국에는 현재의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가 포함되어 있었을 뿐더러, 얘는 스페인 공주였던 엄마 덕에 이미 스페인 왕이었으니까. (스페인 이름은 카롤루스 1세다) 물론 그 뒤의 스페인 왕통은 카를 5세의 자손들로 채워지는데, 바로 이 살아있는 로또의 아들이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만든 펠리페 2세이며, 그 아들인가가 이전에 설명한 안 도트리슈의 아빠인 펠리페 3세로서 오스트리아의 마르가레테 폰 합스부르크(...)와 결혼했었다. 이쯤 되면 우리는 이해할 수 있지 않겠는가. 왜 그리 리슐리외가 목숨걸고 합스부르크 대항전을 펼쳤는지 말이다.
이 로또집안의 재미있는 외견 특징으로는 "말이 힘들 정도의" 긴 주걱턱이 있다. 안 도트리슈도 보면 약간 턱이 길다.
아무튼 카를 5세 이후 합스부르크는 스페인 합스부르크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그리고 각 동유럽의 방계가로 나뉘게 된다. 아무튼 한가지만은 확실히 인지될 것이다. 이쯤되면 합스부르크 가문 외의 사람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된다는건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이후, 스페인 합스부르크는 연속 2타로 2대에 걸쳐 딸만 낳으면서, 반대 연속 2타로 2대에 걸쳐 그 집안 딸래미들과 결혼해 피를 섞은 프랑스 부르봉가 출신의 왕을 맞아들이게 된다. 단, 다른 나라들에게 졸랭 깨진 "전쟁에는 무능하기 이를 바 없는" 루이 14세는 스페인 왕위에 앉은 자기 핏줄에게 결코 프랑스 왕위를 물려줄 수 없었고, 그래서 두 나라는 다른 역사를 지니게 된다.(여기서 다시한번 결혼의 묘미를 깨닫는다. 끄덕끄덕) 그리고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벨기에, 스위스 등의 나라들은 죄다 독립해 버린다. 빌헬름 텔이 아들 머리 위의 사과에 활을 쏘아야 했던게 바로 합스부르크 지배시의 일이다.
역사는 흐른다. 다른 지역의 합스부르크는 귀족가로 자리잡거나 왕통에서 사라져갔지만,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는 계속 줄기차게 혼인을 하고 아이들을 줄줄 낳아 다시 유럽의 왕실들과 결혼시키면서 줄기차게 신성로마제국 황제위를 이어갔다. 합스부르크 가의 결혼 중 여러분이 역사책에서 본 것만 조금씩 들어보자면, 루이 14세 자신도 합스부르크 가의 스페인 공주 마리 테레즈와 결혼했고, 15세는 무려 역시 합스부르크 가인 스페인공주와 약혼했다가 파혼했던 경력이 있으며 - 정작 왕비는 폴란드 공주였는데, 일생동안 귀족들에게 비웃음거리에 경멸당했다고 한다. 하긴 대대로 합스부르크 가 공주랑만 혼인하다 갑자기 동유럽의 "비교적"작은 나라 공주가 나오니까 황당하긴 했겠지만 말이지 -_-+ - 루이 16세는 오스트리아 공주인 마리 앙뜨와네뜨와 결혼했다.(......) 마리 앙뜨와네뜨(마리아 안토니아)는 동시에 신성로마제국의 황녀이기도했다. 그리고 그녀의 엄마는 바로 "카이저린 운트 쾨니긴" 즉, 신성로마제국 유일의 사실상 여황제이며 오스트리아의 여대공이며 헝가리와 보헤미아의 여왕이기도 한 마리아 테레지아였다.
자아, 이 마리아 테레지아는 신성로마제국의 여황제로서 인정받기 위해 엄청난 고난을 견뎌야만 했다. 왜냐고? 상속법에 황위는 여자한테는 못 물려주게 되어 있었거든. 문제는 저 위에 든 나라들 중 다른 나라에는 다 여왕이 있을 수 있는데 유독 신성로마제국 계승법은 살뤼끄, "살루카"법이라는 프랑크식 대통법을 따랐다는데 있다.(사실 저 법은 가짜다 -_-; 프랑크 왕국을 이끌었다는 살뤼 족의 진짜 계승법과는 연관이 없는데, 공주들을 시집보내다 보니 불안해진 나라에서 여성의 계승권을 박탈해 계승문제를 해결한 것 뿐이다.) 당연히 합스부르크의 오래오래오래오래된 독점을 못마땅해 하던 각종 나라들이 딴지를 걸고 싶어하게 되는데,
바로 이때, 무럭무럭 자라던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프리드리히 대왕)가 정면 딴지를 건 거다.
프로이센, 혹은 프러시아. 바로 현재 독일의 조상님 되시는 나라다. 원래 정말 별볼일 없는, 신성로마제국 소속의(이 나라가 얼마나 널럴한 구조인지는 분명 설명했을 거다) 쪼꼬만 두 공국이 합쳐 나라를 만든 거였다. 당시 사람들은 그걸 한마디로 "삽질"이라고 부르며 비웃었는데, 무려 그 두 공국은 서로 영토가 닿아 있지도 않았다. 우리나라로 치면 강원도와 전라도가 통합하겠다고 나선 꼴이라는 거다. 얼마나 황당한가.
아무튼 이 쬐깐한 나라는, 마리아 테레지아에게 딴지를 걸 때까지 단 세명의 왕을 두었을 뿐이었다.
(1) 첫 왕인 프리드리히 1세 - 자손들이 하도 화려해서 임팩트가 없다.
(2) 그 아들 프리드리히 빌헬름 - 군사 오타쿠 -_- 애기때부터 아들한테 군복을 입혀 병사를 사열시키곤 한 데다, 아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루트와 문학을 사랑하며 남자 애인을 사귀는 준재로(...) 자라나자, 아들의 남자 애인을 눈앞에서 총살하는 등, 친구들을 죄다 죽여버리고 아들녀석은 감옥에 가둔걸로 유명하다. 어쨌건 프로이센의 군국주의적 성향을 확실히 잡은 인간이다.
(3) 프리드리히 2세 - 교과서에 나오는 바로 그 프리드리히 대왕 - 문약한 왕이 될 거라고 다들 믿었건만, 오히려 아빠보다 더 무서웠던 놈. 아빠가 애인을 죽이자 부인에게서
계승자를 씀풍 낳은 뒤 애도 안 낳고 자기 밑의 장군을 애인삼아 즐거운 인생을 보낸 듯 하다. 상수시 궁전은 이 사람이 베르사이유를 벤치마킹한 결과다.
이 프리드리히 대왕은 마리아 테레지아가 여황제를 하겠다고 나서자 잽싸게 딴지를 걸어 2차에 걸친 오스트리아 계승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한때 언제건 끝장나면 자살하기 위해 로켓을 목에 걸고 다닐 정도로 궁지에 몰렸지만, 결과적으로는 마리아 테레지아 남편(...)의 황위 계승을 인정하는 대신 상당히 알짜배기 영토를 얻어내게 된다. 그리고 슬슬 유럽이 혁명의 불길에 휩싸이면서, 다시 역사의 판도가 바뀌게 되는 것이다.
왕의 목이 댕강 날아가고 어쩌고 저쩌고는 다 아는 얘기니까 넘기자, 문제는 이거 1편에서 말했든 나폴레옹이다. 그 코르시카산 깡패는 요즘 세계적으로 명성을 날리는 시칠리아산 깡패보다는 규모가 컸지만 별반 다르지 않는 짓들을 했었는데, 아무튼 중요한 것은, 이때 오스트리아는 꼼짝도 못 하고 프랑스에게 점령당했다는 것이다.(영화 그림형제를 보면 그게 댑따 아프게 와닿을 것이다. 내내 프랑스 억양으로 말을 해 대는 영국배우를 봐야 하다니 -_-; ) 자, 깡패가 세를 얻었으니 마누라부터 바꿔야 하지 않겠는가 -_- 나폴레옹의 첫째 마누라인 조세핀은 꽤 유명한데, 그 아저씨 둘째 마누라는 바로 합스부르크가의 공주인 루이제였다. 문화의 도시 빈에 닭내나는 프랑스 애들이 바게뜨를 들고 몰려든 셈인데, 루이즈는 나폴레옹을 대단히 싫어했다고 한다 -_- 평소엔 말도 잘 안 했다나. 반면 나폴레옹은 루이즈를 댑따 좋아했다고 하며, 그러한 점 때문에도 난 나폴레옹이 싫다.
바로 이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 이긴 후, 멋대로 심성로마제국 휘하의 영방국가들을 빼내 라인란트 연방을 만들어놓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프란츠 2세는 스스로 황위를 내놓아 "오스트리아 제국의 프란츠 1세"가 된다. 그렇다, 천년제국을 말아먹은 건 바로 코르시카산 깡패였던 것이다. 신성로마제국은 이후 "오스트리아 제국"이라는 이름으로 남게 된다. 그리고 이것으로 인해 제국 황제가 그나마 갖고 있던 지배력은 더더욱 약화되는 것이다.
자, 역사는 흐른다. 조강지처 내쫒고 잘되는 놈 없지.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나폴레옹은 망한다. 그런데 누구한테 망했는지 생각해 보자. 바로 프로이센과 영국이다. 그리고 워털루에서 프로이센은 진가를 발휘한다. 나폴레옹의 예측을 뛰어넘는 진군 속도로 프랑스군의 허를 찔러 나폴레옹 제국을 끝장내 버린 것이다. 당빠 루이제는 잽싸게 나폴레옹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하지만, 아무튼 이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하다. 합스부르크는 나폴레옹을 막지 못했고, 신성로마제국 - 아니, 오스트리아 황제는 한게 없다. 독일 제국(諸國)의 해방은 오히려 프로이센이 가져왔다. 어중간하게 중립으로 발 빼고 요리조리 회피하다 들어먹은 거긴 하지만 아무튼 말이다.
역시 역사 교과서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빈 회의를 기억할 것이다. 나폴레옹이 유배된 뒤, 당시 문화와 정치의 중심지였던 빈에서 벌어졌던 "나폴레옹의 잔재를 쓸어버리자"가 주제였던 회의였다. 오스트리아의 재상 메테르니히가 주동이 되어 벌어졌고 별 소득 없이 끝났는데, 이 빈 체제 당시 해체된 신성로마제국을 대신해 "독일 동맹"이 출범한다. 이 동맹은 대단히 느슨한 모임이었고, 하던 가락이 있으니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이 주축이랄 수 있었는데, 그 뒤는 그다지 자세히 얘기할 것까지 없다. 오스트리아는 점점 몰락했다. 프로이센은 점차 강해졌다. 심지어 그때까지 간신히 오스트리아의 영토였던 헝가리도 민족주의의(웃음) 힘을 받아 독립하고 싶다고 찡얼대는 형편이었고, 오스트리아는 결국 헝가리 귀족과의 협상 결과로 국호를 오스트리아-헝가리로 바꾸며 다른 모습을 취하게 된다.
한편 프로이센은 점차 오스트리아와 거리가 먼 북쪽 영방국가들의 경제권을 자국 중심으로 바꾸가면서 강대해진다. 1850년 이후에는 아예 경제조차 오스트리아 제국보다 프로이센이 더 중심이 되는데, 이쯤 되면 슬슬 독일 통일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 중심이 더이상 오스트리아가 아닌, 프로이센이 된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게 된다.
독일 통일에 대한 논의 주의로는 대독일주의와 소독일주의가 있었다. 간단히 말해 프로이센이 중심이되는건 기정사실이고(...) 오스트리아 제국을 통일에 끼워주느나 제끼느냐 하는 문제가 된 것이다. 자, 범 게르만 주의로 본다면 들어갈만 하다. (...라는 말부터가 오스트리아 사람들로서는 버럭 할 문제다. 아니 지금 종갓집이 어딘데 감히 방계가 말이지..) 그러나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은 기타 독일의 영방국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정도로 "혼합"되어 있다. 당시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은 오스트리아+헝가리+러시아와 나눠먹은 폴란드 일부+기타등등 소국들로 인종범벅이 되어 있었던데다, 이제껏 죽어라 타자쳐 놓은 것을 보면 짐작가겠지만 역사 내내 여기저기랑 얽혀서 아무튼 "독일 민족"이라는 걸 주장하는 애들이 보기엔 또 짬뽕도 그런 짬뽕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독일 제국의 성립 당시 조낸 왕따를 당하게 된다.
.....고백하는데, 지금 바로 위의 저 문장 하나가 어떤 의미인지 설명하기 위해 이 글을 썼다 OTL
안 그러면 피상적으로 "독일 제국에서 오스트리아가 왕따래, 근데 서로 다른 나라잖아, 왕따라니? 오스트리아-헝가리는 또 뭐야? 신성로마제국? 그게 1차대전이랑 무슨 상관? 근데 왜 2차대전때 오스트리아는 독일이랑 전쟁도 안 하고 통합된 거야?" 등등의 질문들이 쏟아질게 뻔하지 않은가 -_-
의미를 따져봐라. 이건 엄청난 거다 사실은 -_-; 북독일 연맹에서 독일 제국으로 이어진 "독일"과 신성로마제국에서 오스트리아 제국으로 이어진 "오스트리아"의 역사는 사실 이런 식으로 분리되어 있을 뿐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둘이 같은 "독일어"를 쓰고 "독일 문화권"이라고 불리는게 괜한게 아니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또한, 슬라브인이나 마자르인이 몹시 혼재되어 있던 오스트리아 제국을 버리고 가면서부터, "범 게르만주의"는 "독일 민족주의"로서 다양한 민족을 받아들이기 거부하는 "순수성"의 사상을 뿌려대게 되며, 이것이 바로...
한 오스트리아 출신 하사관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심어주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