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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히틀러와 그의 추종자들이 유태인을 600만 학살했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좀더 자세히 아는 경우 그것이 실은 500만 좀 넘는 유태인과 60만의 집시, 20만의 동성애자, 2만의 정신병자를 합한 수라는 것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리고 좀더 자세히 아는 경우, 저것은 노동수용소에 끌려가거나 혹은 점령 당시 인종청소에 의해 학살당한 슬라브인들이 빠진 수라는 것도 알고 있다. 참고로, 2차대전의 소련 영역 내(벨로루시 우크라이나등 추가) 사망자는 군인까지 합쳐
10002500만명이다. 2차대전 전체 사망자의 5분의 1인가쯤 될 거다. 아니면 3분의 1이거나. (회사에서 글 남기는 인간에게 너무 많은 것은 기대하지 마라)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검은 호밀빵을 크림치즈에 찍어 맥주 한잔과 소시지와 함께 먹는 것이 인생의 낙이던 수수한 독일인들이 왜 이렇게까지 미쳐돌아갔는가는 모른다.
일반적으로 "히틀러 납하요" 라는 것이 사람들의 대답이다. 독일인들이 히틀러를 상대로 막 미쳐돌아갔다는 것이다. 즉, 대공황으로 단체패닉에 빠져 있던 독일인들이 혜성같이 미친놈이 하나 나타나자 그 미친놈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닥치는대로 유럽을 점령하면서 다 죽이고 돌아다녔다는 말씀 되겠다. 물론 한때 독일인들도 그렇게 주장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누가 자기들이 그런 짓을 저지른 것에 대해 "내가 나빠"라고 할 수 있겠는가? "쟤가 나빠"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사람 본능이고, 마침 나치스의 수뇌들이 있으니 걔들을 갖다대면 된다. 사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일본 천황을 전범으로 정하자는데 반대하는 입장이다. 내가 보기에 진정한 전범은 바로 예의바르고 양심적이고 착한 일본 국민들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놈의 대동아 전쟁이라는게 어떤 것인가 말이다. 지금 우리와 우호관계를 맺고 있는 그 친구들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너무나 국가의 명령에 의심없이 잘 따랐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던가? 물론 소수는 저항했다. 그러나 그러한 소수를 비국민이라고 부르며 돌을 던진 것은 누구였는가? "전쟁 때문에 그랬어. 전쟁이 나쁜 거야" 라고 변명하고 외면한 바로 그들이다. 우리도 단단히 기억하자. "전쟁이 나쁜 거야" 라는 말은 비겁한 회피다. 이것은 6.25에도 베트남에도 이라크에도 적용된다. 전쟁에 참여한 것은 우리다. 언젠가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질 날이 오면, 미국 탓으로 돌려선 안된다. 미국을 선택한건 우리잖아.
뭐, 마찬가지다. 처음엔 나치놈들이 나빠서 독일 국민들을 현혹했고, 자기들은 걔들 말하는 대로 다 따라했을 뿐이라고 주장하던 독일인 중에서 슬슬 양심의 소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빌리 브란트가 뮤지컬 주인공이 될 정도로 유명한 건 그것 때문이다. "난 저항했으니까 떳떳해" 라는 사람들, 잘 봐 둬라. 사회주의자로 나치를 피해 이름을 바꿔가며 도망다녀야 했던 그가 바로 수상이 된 뒤 독일 전체의 책임을 통감한다며 이스라엘까지 찾아가, 역사상 그들의 위령소에 무릎까지 꿇고 고개숙인 최초의 독일 총리가 되었다.
또 얘기가 새니까, 그럼 도대체 왜 독일인들이 미쳐돌아갔을까를 생각해 보자. 고등학교때 세계사를 좀 생각해 보면 얘기가 쉬워진다. 다음의 명사들이 기억나나? 범 게르만주의, 범 슬라브 주의. 기억난 사람 브라보! 학원에서 가르칠때 아무리 달달 외우게 해도 못 알아먹더라 -_-;
간단히 말하자. 이 둘은 민족주의다(싱긋) 별거 아니다.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1780년 이후에나 사전에 등장하는걸. 슬라브족, 게르만족, 앵글로 색슨족, 점령 오타쿠 전쟁광 나폴레옹 덕분에 무식한 프랑스인들에게 자유와 박애의 이념으로 처참하게 짓밟힌 지역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는, 언젠가부터 자신들이 저 프랑스 새끼들과는 다르다는 믿음이 강렬하게 생기기 시작했다. 근데 생각해 보자. 자유, 평등, 박애. 좋다. 이름은 진짜 좋다. 이 좋은 이름에 뭘로 저항할 수 있나? 나폴레옹이 쫓아내 버린 왕을 숭배하는 걸로? 그걸론 부족하다. 뭔가 좀더 강력한 것이 있어야 한다. 혈통적인 것, 지역적인 것, 문화적인 것, 하여 우리가 저 프랑스 놈들과 뭐가 다른지를 강렬하게 일깨워주는 것!
그렇게 선택된게 민족주의다. 각지에서 민족주의가 불길같이 솟아난다. 이탈리아에서, 바스크에서, 라인란트에서, 그리고 사방으로. 나폴레옹이 물러가고 왕들이 돌아왔지만 한번 자유와 평등과 박애의 맛을 본 사람들은 자기 머리 위에 왕관쓰고 앉아있는 상관을 마뜩치 않아 했을 뿐 아니라, 그러한 왕실보다도 민족이 우선이라고 여기기 시작했다. 왕들이라고 해 봤자 나폴레옹이 쳐들어왔을 때 도망밖에 더 갔는가. 그러나 민족은 영원한 것(싱긋).
시간이 흐른다. 사회주의가 등장한다. 세상은 혼돈에 차 있고 왕들은 교활해진다. 그들은 민족주의가 사회주의보다 훨씬 이용하기 좋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파악해 냈다. 특히 민족이 여러나라에 걸쳐 있는 국가드은 그런 자신들의 민족주의를 이용해 타지를 집어삼키길 원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기서 좀 많이 배울 필요가 있다. 역사가 괜히 거울이라는게 아니지.)
범 게르만 주의란 그런 거다. 간단히 말해 "게르만 사람들은 전부 한 국가에 뭉치자" 다 "하나의 민족에는 하나의 국가"이다. (슬슬 여기서 이거 어디서 들어본 말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계실 거다. 역사에 흥미 있던 분들과 엘리자베트 팬들 중에서) 범 슬라브주의도 마찬가지다. 모든 슬라브인들은 한 국가에 뭉치자는 것이다. 물론, 기왕이면 자기 국가에(웃음). 당연히 이 둘을 주장한 중심국가는 프로이센과 러시아였다.
문제는 말이다, 이 "범 어쩌구 주의"란 사실 전쟁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주의라는데있다. 예를 들면, 조선족 자치구에 조선인이 중국인보다 많으니 중국인을 몰아내고 조선인들끼리 뭉쳐 영토를 병합하자는 얘기가 되는데, 중국과의 전쟁 없이 그게 가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게다가 중국인들이 범 한족주의 제창하면 어쩔 건데? 당장 한족이 지배하는 것은 다 자기 땅이라고 하면 동남아부터 중국 것이 되어야 한다고 난리치는게 당연한 순서다. 게다가 한국인들 놓고 "니들도 우리랑 피가 많이 섞였잖아, 유전적으로 봐서 어쩌구" 까지 들어가면 끝장이지 -_-;;;
사람과 사람이 살을 섞고 사는데, 어디 인간이라는 종족이 민족 가려가며 남친 여친 사귀더냐. 섞이고 섞이는 것이 세상 순리거날 그러니 당연히 독일에서 조금만 더 동쪽으로 가면 게르만과 슬라브가 섞여있는 국가가 부지기수인 게다. 우리는 게르만, 하면 다 독일인지 알지만 그럴리가 없지 않은가 -_- (게르만족의 이동 좀 생각해 봐라.) 폴란드만 해도 게르만 혈통이 엄청나게 많았다. 하나의 국가가 하나의 민족으로 구성된다는 착각은 버려라. 단일민족? 우리만 해도 수많은 민족이 섞인 결과물인 게다. 물론 이렇게 좁은 곳에 오래 갇혀 살았으니 민족이라고 믿을만한 특성은 강하다만, 좀더 열린 사고를 가질 필요는 넘쳐난다.
넘어가서, 아무튼 그렇게 서로들 욕심을 부렸더랬다. 제국주의와 민족주의는 서로 다르다. 그리고 영국이나 프랑스의 제국주의는 - 특히 영국의 제국주의가 - 다민족적 양상을 띤다. 걔들이야 세계로 뻗어나가 세계 경영을(싱긋) 해야 했으니 자기들만 모여살자 하면 대 손해다. 그러나 솔직히 식민지 경쟁에서 별로 건진 것이 없는 프로이센이나 러시아의 경우 민족주의는 큰 가치를 지닌다. 그것도 아주 이기적인 동인으로서.
무슨 얘기인고 하니, 이놈들은 민족주의를 이용해 "니땅은 내땅, 내땅은 내땅" 식 논리를 펼쳤다는 얘기다. 저기 독일인이 60% 살고있으니 우리땅 할래, 근데 거긴 슬라브인이 40%니 러시아 땅이야, 라고 했다는 거다. 당연히 그 와중에 큰 충돌이 일어나게 된다.
1차 세계대전은 그렇게 일어났다. 뭔 얘기냐고 프로이센 얘기를 신나게 하다가 왜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사건이 주 원인인 전쟁 얘기가 나오냐고? 자, 조금 추리해 보자.
범 게르만주의가 프로이센 사람들의 심금만 울렸을 리가 있나. 애시당초 프로이센이 독일 제국으로 거듭난 것부터가, 합스부르크 제국을 질질 끌고 가기 귀찮아서 떼놓고 북독일의 조그만 영방국가들을 사그리 쓸어모아 제멋대로 제국 참칭을 한 건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사람들 중 다수를 차지하는 게르만인들은 당연히, 헝가리 같은 우스꽝스러운 애들을 동급으로 대접해 줘야 하는 것부터가 짜증나는 상태였단 말이다. 헝가리 인들은 마자르족과 슬라브족으로 이루어져 있고, 당시 상당히 광대했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토에는 현재의 폴란드 영토도 다수 들어있었을 뿐 아니라, 오스트리아는 슬라브가 가득한(그리고 게르만도 많은) 세르비아 등의 나라도 넘보고 있었으니 당연히 범 게르만주의자들은 짜증이 이빠이인 상태다.
바로 위에 순수 독일인의 나라가 있단 말이다. 쓸데없이 질 떨어지는 슬라브 애들 동급으로 취급 안 하는 국가가.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재정구조의 상당부분이 오스트리아의 헝가리에 대한 원조적 성향을 띠고 있었던 것까지 감안해 보길 바란다. 분명 같은 민족인 북한에 퍼다주는 것도 짜증내는게 국민의 인심이다. 다른 민족의 덜떨어지는 애들을 괜히 동급제국으로 만들어 대접해주는 것도 짜증나는데 원조까지 해 줘 봐라. 프로이센으로 눈길 가는건 금방이다.
그래서 한창 성장중인 프로이센에 눈길을 한껏 보내고 있었는데, 무려 범 슬라브주의자인(웃음) 암살범이 황태자를 암살한 거다. 마침 프로이센과는 동맹이다. 전쟁이 안 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