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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 글 프로젝트- 한 여자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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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30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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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가 있었다. 아버지는 죽었고, 하나뿐인 오빠는 찢어지게 가난한 살림 덕에 친척집에 양자로 팔려갔다. 어머니와 딸은 군불도 때기 힘든 집에서 하루 하루를 간신히 버텨갔다.
제대로 된 관원 하나 없는 양반가라는건 별반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 타이틀, 그렇다고 집안 이름을 팔아먹지도 못해 모녀는 삯바느질에 아주 간혹 친척들이 흘려주는 온정 조각으로 한 해 한 해의 겨울을 났다. 양자된 오래비는 자주 오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그 한명은 굶지 않으니 다행이었다.
그런데, "그래서" 딸은 갑자기 엄청난 혼처를 잡았다. 돈 없는 양반가의 딸, 미모가 있건 재주가 있건 똑같이 먹다남은 반찬만큼도 가치없을 잔반가에 시집가던가 굴욕을 뒤집어쓰고 중인댁으로 들어가야 할 처지, 호적에서 파일 각오를 하고 차라리 기생집에 들어가는 것이 나을지도 모를 처지에 엄청난 혼처가 들어온 것이다. 혼처가 들어온 이유는 '집안이 가난하고 볼 것도 없어서'. 굴욕적인 이유였지만 그런 생각을 할 여유따위 없었다. 당장 군불도 음식도 옷도 부족하지 않게 될 굉장한 혼처이지 않은가.
허나 대가는 호되었다. 어린 신랑이 그쪽은 조숙했는지 나이가 훨씬 많은 첩실이 있었더랬다. 그 첩실이 무려 동성 동본인데도 그 치맛자락에 홀랑 빠져서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정분이 났다 했다. 어린 눈에 억울해서 눈물이 나기에는 시애비가 무서웠다. 엄혹한 세월을 견뎠다는 시애비는 어린 며느리가 조금이라도 주장을 할라치면 헛기침 큰 한소리로 말도 못 붙이게 했던 것이다. 시애비는 여자 집안 잘나봤자 떠세만 부린다며 일부러 가난한 집 여자애를 골라온 터. 누구건 첫아들이면 대를 잇게 하겠노라 큰소리치며 헛구역질을 시작한 첩실에게 갖은 보약과 함께 살가운 시선을 주느라, 저만치 서서 그 광경을 묵묵히 보고 있는 며느리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더랬다.
첩실에 정신을 못 차리는 어린 남편, 첩실이 고추를 낳을지 도끼자국을 낳을지 고민하느라 정신 못 차리는 시애비. 그나마 어린 며느리에게 위안이 있다면 시어미의 구박은 없었다는 점이었다. 시어미는 어린 며느리의 멀고 먼 친척이었고, 그래서 며느리를 돕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서운한 눈길 보내며 구박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어린 며느리는 책에서 해답을 찾았다. 집이 부유하니 책은 널려있었고 남편도 찾지않는 어린 새아씨가 책장을 붙든다고 시비거는 이도 없었다. 며느리는 자신이 글을 배웠다는 것을 감사하며 좌씨춘추며 병서며 역사서며 갖은 책들을 닥치는대로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여성의 품성을 논하는 책 따위, 자기 설운 위치만 더 서러워지지 않던가. 며느리는 그렇게 책에 몰입하며 점점 더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지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시애비는 늙어갔고 남편은 자랐지만, 호된 아비 밑의 자식이 그렇듯 남편은 우유부단하기 짝이 없었다. 모든 결정을 시애비가 내려주는데 너무 익숙한 그는, 나이 스물이 넘어서도 첩실과 첩실 치맛자락을 맴돌며 손가락만 빨고 있을 뿐이었다. 며느리는 남편을 믿지않는 법을 익혔고, 첩실을 증오하되 적절히 티 내지 않는 법을 익혔고, 시애비를 몰아내야면 자신이 기를 펼 수 있다는 것을 눈치챘고, 그러려면 자기 사람이 아주 많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 시애비가 자신을 구박하고 몰아붙이는 이유는 바로 "며느리의 사람"을 만들어주지 않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남편은 여기저기 허리를 잘도 들이대어, 어느덧 여자로서 물기가 오른 며느리도 배가 부를 날이 왔다. 태가 약했을까, 씨가 약했을까. 첩실은 아들을 낳아 첫아들이라며 자랑하고 있었는데 며느리는 영 제대로 된 아이를 낳지 못했다. 시애비는 그런 며느리를 볼 때마다 혀를 끌끌 차며, 첩실 소생의 아이가 참 똑똑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던 터였다. 며느리는 그럴 때마다 이를 질끈 악물며 아들 하나를 척 낳아서 보란듯이 장자로 인정받게 하겠노라고 생각했다.
...여기까지 쓰고 시간 지나서 일단 끊는데다, 쓰다보니 길어서 귀찮아졌다. 소설도 아닌데.
저렇게 자란 여자가 어떻게 위대한 국모가 될까. 타인을 향한 가차없는 잔인함의 원인은 결국 자신이 당했던 잔인한 처우를 잊지 못해서겠지.
난 사람들이 명성황후라는 어떤 사람에 대해 얘기할 때마다, 죽은 미우라가 민자영의 원혼에 배포좋게 웃으며 말하는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당신 나한테 감사해야 하오. 바로 당신을 궁궐안의 여우라 부르며 잡아죽여야 한다고 벼르던 사람들이 내 덕에 당신을 찬미하고 있지 않소. 내가 아니었으면 당신 시애비만 뜨고 당신은 망국의 여우로 남았겠지. 저치들은 우리를 욕하느라 바빠서 당신이 자기 조상들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는 다 잊어버렸소. 흠이라면 당신이 어떤 정신세계를 갖고 있었는가 따위 관심없다는 거지만, 어차피 살아생전 불렸던 적도 없는 황후마마 칭호로 불리는데, 그정도는 감수해 주시겠지?"
명성황후는 마지막 황후가 아니다. 그녀는 살아 생전 황후였던 적도 없다. 그녀는 "조선의 마지막 왕비"였다. 그리고 조선의 모든 이름이 알려진 왕비 중 가장 그 존재가 철저히 말살되고 왜곡되어버린 불쌍한 존재다.
민자영, 그녀의 이름은 민자영이다. 힘든 어린시절의 대가로 잔인하고 냉정하고 날카로운 성품을 지녔던 그녀의 이름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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