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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워크샵으로 가게 된 필리핀. 갑작스런 준비라 여행가방도 엄청나게 간소했다. 목요일 밤 떠나 금요일 새벽 도착해서 일요일 밤 한국에 도착하는 일정이었지만 내가 굳이 해외 가서 골라둔 예쁜 옷 입어볼 타입도 아니고, 편의성 위주로 가방을 짰다. 다음은 짐 리스트.
의류/
얇은 긴바지 1벌, 청반바지 1벌, 여름 티셔츠 1벌, 반팔 남방셔츠 1벌, 츄리닝 바지 1벌, 양말 두벌, 기본속옷 1장씩
실용성 화장품/
선크림 +50짜리 하나, 모기 피하는 스프레이
기타/
디지털카메라, 옷걸이 하나, 중대 크기의 비닐봉지 2개, 필기도구, 레미제라블(......),
맥가이버칼, 건전지 3팩
(....여행해보신 분들은 지금 이 리스트에 문제가 발생했다는걸 감 잡으실 거다)
그 외의 의류는 내가 입고간 한국의 가을옷과 운동화 뿐이었다.

사용법을 배운 날 저녁 치킨집에서 찍었다. 뒤에 찍힌 다스베이더 혼령은 나도 잘 모르겠다.
가방은 다행히 친척댁에서 주신 작은 여행용 트렁트가 있길래 그걸 사용했다. 회사에 갔더니 사람마다 정말 트렁크 크기가 다양한데 난 꽤 작은 편이었다.

초록색이 내 것으로, 현재 가방들은 엄마 아빠 아기 트렁크놀이를 하고 있다. 색이 다른건 격세유전 때문이리라.
4시까지는 정상근무였다. 그 뒤 다른 프로젝트 팀원들에게 눈치보이지 않기 위해 트렁크를 끌고(이미 미션 실패......) 부서별로 살금살금 들들들거리며 빠져나왔다. 미리 알아군 공항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었다.

찍는 사람을 찍는것을 좋아하기에, 열성적으로 사진 찍고있는 그림자양을 찍어봤다. 다행히 초상권에 대한 일체의 항의는 없었다.
사실은 버스도 찍었지만, 흔들렸으니 일단 뺐다. 김포공항을 지나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과연. 90년대 이후 우리나라 왠만한 공공시설들이 그렇듯 "내가 공항이거든? 한 공항 하거든? 크고 알흠답거든? 설계 현대적이거든? 잘났거든? 의 삘이 풀풀 풍겼다. 그러나, 이 때만 해도 나는 한국의 크고 알흠답고 70%쯤의 확률로 몰취미한 부지낭비형 시설들에 워낙 익숙해서 그냥 공항이라 크군하, 정도의 심심한 감상을 날렸을 뿐이었다.

사진으로는 그 뽀스는 잘 안 전해진다. 사실 실물을 봐도 여기선 넓이가 안 느껴진다. 참고로, 여긴 1층이 아니라 2층인가 3층이더라. 계단 올라갈 필요 없이 입국하는 사람들이 버스정류장에서 내리자마자 곧장 필요한 곳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좋은 점이었다고 생각한다.

들어가자마자 보게 된 상당한 풍경. 난 공항을 밥먹듯 드나드는 인종이 아니라 일단 신기한 것부터 찍었다. 저 카트들을 모두 한 사람이 차로 이어 밀고 있었다. 물론 실내기차놀이가 생각나서 찍었다.
공항은 재미있는 느낌을 주었다. 적어도 건물을 둘러보는데 살풍경하다던가 몰취미하다는 느낌은 덜 주었다고 할까?

초상권 수호를 위해 정의의 마스크를 동원했다.
공항 내부는 제법 마음에 드는 공간이었다. 천장의 저런 골조물, 개인적으로 좋아한다.(.....내가 원래 좀 그렇다 =_=) 그리고 보다시피 자기가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보기 쉽게 만들어 두었다. 세계 각곳의 사람들이 모이느니만치 그림 표지판 같은 것들이 많았고, 일본식 한자표기와 중문식 한자표기가 함꼐 있는 재미있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사진 수가 별로 없는 곳은 이 곳에서 겪은 난항 때문이었다.

처음엔 이렇게 좋아하는 골조들을 찍으며 희희낙락하고, 사우들과 게임을 즐기던 토끼였으나......
드디어 가이드들이 도착했다. 애시당초 아는 사람은 아느니만치, 토끼는 패키지에 목줄 끌려 간다는 것이 얼마나 개성을 포기하고, 하고 싶은 것을 못 하게 되고, 보고 싶지도 않을 것을 보게 되고, 먹고 싶지 않은 것을 먹게 되고, 원하지 않는 옵션을 붙이게되는 것인지 처절하게 느껴야 했던 만큼 이들에 대해선 별로 신뢰가 가지 않았고, 앞으로도 신뢰를 가질 생각이 전혀 없게 되었는데, 나중에 필리핀에서 돌아올 때 내 판단이 옳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_= 가이드라는 업종에 종사하셨던 아는 분도 계시고 해서 그 업종 자체에 대한 편견은 없다. 다만 이번 가이드들은 별로 신뢰도 가지 않았고 마음에도 들지 않았고 그게 맞다는 것이 나중에 입증되어서 전혀 기쁘지 않았다는 것 뿐이다(......) 일생동안 하나투어는 이용하지 않을 거고, 패키지 여행도 나 자신을 위해서는 이용하지 않을 작정이다. 만일 내가 결혼하게 되었는데 남편이 신혼여행을 패키지로 가자고 하면 혼자 보내주고 난 친구들이랑 놀아야지 =_=
아무튼 그제서야, 옵션 소개와 옵션 관련 지식에대해서는 그렇게 열심히 설파했던 그들이 알려주는 얘기에 따르면, 디지털 카메라 등에 들어있지 않은 건전지, 맥가이버칼, 스프레이 등은 반입 금지라는 것이 아닌가! 순간 엄청나게 당황했다. 건전지는 포기할 수 있지만, 모기 스프레이는 살아있는 모기밥상, 모기향인 나에게는 치명적인 얘기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맥가이버칼은 어머니의 유품...은 아니지만! 어머니가 쥐어주신 물건이었고 요 3년간 매우매우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던 손때묻은 것이었다!
다행이었던 것은, 다른 분들이 건전지는 분산 소지해 주셔서 무사통과됐고, 스프레이는 프레온 가스를 사용한 것만 금지여서(하아...) 그냥 분무기였던 내 모기퇴치약은 무사했다는 것이었다. 엄격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검색직원들에게 일일히 다 뚜껑을 열어 안을 보여주고 무사통과 할 수 있었다 =_=
그리고 맥가이버칼은?
그건 방법이 없었다. 아예 방법이 없는 거다. (그러니까 옵션 하나에 몇만원이고 그 옵션들을 조합하면 얼마고 이런거에 광분하고 있을때, 여행요령에 그거 좀 끼워주면 덧났던 것이냐 하나투어?!) 들어가면 무조건 뺏긴다. 그래서...........
마침 맥가이버칼을 가져왔던 다른 키 큰(......) 사우의 도움으로 공항에서 사람들 눈에 띄지 않을 주차장 간판 위에(......) 슥 올려두었다. 에드거 엘런 포우 기법이랄까 =_=
아무튼 이런 저런 과정을 거쳐 드디어 공항 검색대를 다 통과하고 면세점 구역으로 들어섰다. 처음으로 명품 매장이라는 곳에 가서 구경했는데, 기발하거나 예쁜 것도 있었지만 "흠, 명품이란 안이하다는 것일까" 싶은 제품도 꽤 있었다. 구두는 샤넬이 몹시 귀여웠던 것이 기억나고, 가방은....내가 구찌의 그 마름모 패턴을 좀 미친듯이 사랑한다. 사고 싶어한 일은 없지만 구경하기 즐겁다는 얘기다.
오히려 플러스 포인트였던 것은 남자 넥타이들. 역시 남성 패션의 진수라, 내가 만일 강남 싸모님이었다면 내 몫의 명품은 안 샀을 거 같은데 남편에게는 꼭 에르메스나 다니엘 에스떼의 넥타이를 매어줬을 거다. 립스틱 묻혀오면? 남편에게 그 여자 주소를 물어서 부쳐야지. 니가 빨아오라고(......)
아, 예외: 역시 난 불가리 보석들이 좋다. 불가리 매장에 정작 내가 미친듯이 좋아하는 향수가 없어서 슬펐다. 그래, 유행 지났다 이거지 OTL "불가리 블랙이요? 매장에 없어서 가격을 모르겠어요"라고 했던 면세점 아가씨, 그거 자랑 아니오 =_=;
그때부터 이것저것 사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난 일단 거기서는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비행기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비행기는....

안녕하세요, 세부 퍼시픽 항공기예요. 처음 뵙겠어요.
귀, 귀엽잖아!!!!!!!!
;ㅁ; 얘야, 너무 귀여운 거 아니니? 옆에 서 있던 노스웨스트인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저 아담한 체구, 비즈니스와 퍼스트 클레스 구분도 없는 소밧한 좌석, 어딘가 수줍어 보이는 소박한 얼굴 표정, 그리고...

좁아터진 실내, 딱 붙은 좌석, 바글거리는 사람들(초상권 침해를 막기 위해 다시 정의의 마스크 등장)
......OTL
잊지 않겠다 하나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