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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싸게 만든 아동극 <1>
잡담 | 2006/11/04 11:13
비싸게 만든 아동극 - 이것이 시키의 라이온킹에 대한 공연 기획자, 연출가, 제작진 등 "전문가"의 평이라고 합니다. 예, 사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전 디즈니 계열의 뮤지컬을 두 편 보았습니다. 아이다는 영상을 통해 장면 장면은 접했지만 전체를 보지 못했으니 제외하고, 미녀와 야수, 그리고 라이온킹을 본 거죠. 전 이 두 공연 모두 비싼 아동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미녀와 야수는 정말 예쁘고 귀엽고 맛깔난 공연이었지만 티켓값이 너무 호되게 비쌌습니다. 미녀와 야수가 실패한 뒤 우리나라에서 아동극은 성공할 수 없다며 좌절했다고 했는데, 그 공연에 대해서라면 저도 동의합니다. 미녀와 야수는 즐겁고 화려하고 재미있는 쇼였지만, 그 호된 표값을 물고 온 가족이 앉아 보기에는 부족했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성기윤씨의 뤼미에르를 볼 수 있었던 것을 행운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망할만한 이유는 있었다고 생각해요. 가족 대상으로는 너무 비쌌거든요.

라이온킹도 사실 화려하고 멋진 "비싼" 가족극입니다. 하지만 공연을 보고 난 지금, 전 이 쪽은 좀 다른 결말을 맞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같은 회사(디즈니)에서 나온 애니 원작 뮤지컬이라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배우들은 오히려 거의 다 신인 일색이라 제가 봤던 미녀와 야수 출연진보다 낫다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배우에 대해선 뒤에 소상하게 얘기하겠습니다.) 그러나 역시 줄리 테이머. 상상력의 문제, 연출의 문제가 완전히 달랐고, 아울러 내용도 생각해 보면 완전히 달랐습니다. 이 연출의 뮤지컬을 보고서야, 디즈니 애니를 꽤 좋아하는 저라고 해도 왜 이리 라이언킹만 찝어서 울고 울고 또 보면서도 다시 우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예, 전 원래 라이온킹의 팬입니다. 그 애니가 극장에 걸렸을 때, 고등학생이었던 전 좌석번호가 아직 없었던 극장으로 들어가 보고는 완전히 충격받아 계속 앞으로 가며 보고 또 봐 그 날만 세번을 봤습니다. 그리고 볼때마다 울었지요.

사람들은 라이온킹이 정글대제를 표절했다고 얘기합니다. 왕이었던 아버지 사자가 죽고 아들인 아기 사자가 왕위를 이어가며 성장한다는 점을 얘기하며 라이온킹을 표절작으로 평가절하합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두 이야기는 초점을 맞추고 있는 부분이 완전히 다릅니다. 의도적으로 표절했던 안 했건, 이 애니의 시나리오 작가들은 -그리고 특히 뮤지컬화 하면서 줄리 테이머는 - 좀더 어딘가 사회적인 데가 은근히 강했던(그리고 그게 상당히 매력적이었던) 원작인 정글대제보다는 원초적인 신화구조가 훨씬 더 강조된 작품을 만들어 냈습니다.

물론 이 애니에서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왕위가 이어진다는 점을 놓고 쇼비니스트적이라고 얘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햄릿 이래 너무 흔했던 얘기라 가치가 없다는 얘기도 합니다. 줄거리는 뻔해서 별로 감동도 없고 아프리카에 대한 지나친 신비주의가 우습다고도 합니다. 예, 그 말도 어느정도 맞을 겁니다.

사실입니다. 허나 일단 주인공들이 사자라는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지구상에 존재하는 사회가 1-2개의 부족사회를 제외하고는 가부장적인 이상 계승에 대한 이야기는 일단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이어지는 것으로 묘사되는 것이 당연했고, 이러한 것은 당연히 우리 주위에서 얼마든지 일어나는 일이기에 햄릿 이전부터 이후까지 끝도없이 되풀이되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보기엔 줄거리는 뻔해 보이겠지만, 바로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전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전형적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야기 자체에 의미가 없으니까요.

이 이야기는 세상 어느 문화권에 갖다놔도 그 문화권이 가부장적이기만 하다면 다 통하는 얘깁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RPG가 이것과 동일한 이야기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용사"들이 - 그 중에 얼마나 많은 수가 선대 용사의 자식이거나, 그들과 정신적인 유대를 맺고 있던가요? - 가부장적 사회에서는 나라 전체의 "아버지"에 해당하는 왕, 혹은 황제를 물리치고 들어앉은 사악한 가짜 아버지 "마왕" 을 처단하고 세상을 구해 왔는지를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옵니다. 스카가 지배할 때의 프라이드 랜드의 척박함은 물론 아프리카 특유의 건기-우기로도 설명되는 것이지만, 동시에 영화 엑스칼리버에 나타난 아더왕 설화와, 좀더 오버하며 나아가면 천자 사상과 동일한 주제를 이야기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곧 "왕은 바로 그 나라이며 왕이 바로서지 못하면 대지가 척박해지고 하늘이 노한다"는 것입니다.

극 내에서는 암사자들이 하이에나를 위한 스카의 명령 때문에 지나치게 많은 동물을 잡아 메마른 것으로 이야기됩니다만, 초식동물이 죽어 없어지면 적어도 대지는 풍요로와져야 합니다. 잿빛과 갈색의 프라이드 랜드는 왕의 부재, 혹은 잘못된 왕을 의미하며, 이것은 우리나라에서도 부여 때부터 있었던 "하늘이 잘못되면 왕을 벌한다"는 것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문명권에서 왕/신의 죽음과 부활은 계절의 순환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라이온킹에서 그렇게 강조하는 삶의 순환과 궤도를 같이 합니다. 오해하지 말아 주십시오. 처음부터 이런 것을 생각하고 만들어진 애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차라리 융의 집단무의식을 편드는 편이 더 지금의 제 감각에 맞다고 할 수 있겠어요. 그들이 노렸다기보단 소가 무위식적으로 뒷걸음질치다 옛날에 잡았던 쥐를 잡은 거죠.(비유 한번 조악합니다만 =_=;;;;) 당연히 이러한 이야기는 뻔해 보이면서도 막강한 힘을 행사합니다.

적어도 이 이야기는 가부장적인 문화권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가부장적 신화에 매료되어 자라난, "사실상 아버지가 아들로 키운 딸인" 절 완전히 뒤흔들었고, 거기 디즈니 작가들보다 훨씬 더 신화적인 세계에 매료되어 왔으며, 그 힘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는 연출가 줄리 테이머의 손에 들어가면서 완성된 한 마리 사자왕으로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었습니다.

사랑스런 후배의 결혼식이 있으므로 오늘의 횡설수설은 여기까지. 연재 감상이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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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Avalon의 감자밭 2006/11/04 23:48 x
제목 : 비싸게 만든 아동극
돌아와서 읽어보니 너무 급하게 달린 글이군요. 반성합니다 OTL 좀더 찬찬히 쓸 필요가 있겠어요. 즉흥적으로 쓰고 있다 보니 늘 이런 식입니다 =_=;;; 자아, 아무튼 줄리 테이머 얘..
늑대아찌 2006/11/06 13:12 L R X
저 표절 운운 얘기는 너무 지겨워서 이젠 반응도 안 나올 정도. 디즈니가 '우린 정글대제 보고 삘받아 라이온킹 만들었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도 한참 된 얘기고, 그보다 훨씬 더 전에는 테즈카 오사무 자신이 '난 밤비 보고 삘받아 정글대제 만들었다'고 얘기했는데 말야.
귀는 틀어막은 채 자기 머리 속에 든 지식만 가지고 떠들어대는 사람들과는 얘기를 않는 게 상책.
황금숲토끼 2006/11/09 00:33 L R X
끄덕. 짜증나. 스타워즈 놓고 건담 따라했다고하는 인간이 없는게 그나마 다행일까나 =_=

......하긴, 마비노기가 일본풍 그림이니 일본계 게임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엄청난 사람도 있었지. 무려 플포 기자였다는 작자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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