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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은 불쌍했고
사회는 끔찍했고
가족은 짠했고
관객은 미칠듯이 돌아버릴만큼 공포스러웠다.
그래, 그렇더라. 처음 괴물이 뛰쳐나와 난장치고 돌아다닐 때부터, 어째서인가 괴물은 이상하게 절박해 보였다. 너덜너덜하고 기이한 생명체, 어딜 보아도 기형아, 잘못된 생물, 그래서 고질라, 킹콩, 엘리게이터, 죠스, 벨로시랩터, 오르카와 이 놈은 그렇게 달랐다. 땅 위에 뛰어나오자 마자 제법 잘 뛰는 듯 했던 이 놈은 경사로에서 즉각 미끄덩 하며 넘어졌는데, 그때 받았던 기묘한 느낌은 보는 내내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처음 가져간 사람들을 입에서 굳이 뱉어내는 것을 보았을때 그 의혹은 더 증폭되었고, 이후 생태를 보니 더더욱 심증이 굳더라.
괴물은 사람들 사이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었지만, 그것은 공격하기 위한 생물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놈의 움직임과 가장 닮아 있는 것은, 비명을 질러대는 사람들의 패닉 속에서 어찌할 줄 모르고 여기저기 내달리는 뿔난 송아지의 행보였다. 눈앞에 장애물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털썩 털썩 부딪치며, 닥치는 대로 집히는 대로 물고 덤비다 여기저기 헤매고, 영 서투르고 패닉에 질린 것이, 물 밖에서 난동부리는 사람들에 자기도 더럭 놀란 것이다. 여우는 제먹을 닭 두 마리만 잡고, 족제비는 눈에 띄는 사냥감은 안 먹어도 다 죽이고 본다지만, 이 놈은 첫 사냥에 주위로 뛰고치는 사람들의 비명에 놀라 오히려 제가 비명을 지르며 날뛰더라. 배를 곯다 어쩌다 맛본 다리 부러진 양새끼 한마리 생각하고 먹이를 잡을 요량으로 왔다가 양떼에 휘말린 서투른 늑대 같기도 했다. 그것도 기형으로 태어난 늑대.
불쌍했다. 내내 녀석은 힘껏 뛰어다니며 있는대로 먹이를 구했다. 때까치마냥 먹이를 저장해 놓고 적당히 썩은 것만 골라 먹고 안 썩은 것은 기피하는 걸 보니 습성도 습성이고, 돌연변이인지라 위장 기관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았겠다 싶었다. 물고기 등의 부드러운 음식과 물에 퉁퉁 분 자살자만 먹다가 살과 뼈를 가진 불지도 썩지도 않은 인간을 먹으려 하니 한 번에 먹을 수 없었겠지. 날카로운 이빨을 가졌지만 제대로 된 악력이 없어 물어뜯지도못하고 되는대로 꿀떡 꿀떡 삼켜 가져가고, 후반부 가니 뼈만 토하고(뼈째 삼키는 동물에겐 흔한 일이다. 보통은 털도 같이 뭉쳐나오는데, 그건 너무 추하다 싶었는지, 아니면 뼈를 강조하고 싶었는지 머리털은 뺐더라.) 먹이가 없어 굶는데 저놈이 저리 되고 싶어 된 것이 아니지 않는가. 인간에 의해 기형이 되었던 것을.
그 추한 기형에 의해 당하는 인간들을 보고 있자니 이전부터 있었던 참사 장면이 스친것이 내 데자뷔 때문인지 감독이 참말로 그런 의도를 가졌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인간들은 가엾기도 하고 이해가기도 하고 추하기도 하고 잔인하기도 했다. 어쨌건 확실한 건, 어느쪽이건 그 안에 끼기 싫지만 난 그 안의 하나라는 거다. 짓이겨진 고깃덩어리에 트레일러 밑으로 줄줄 흐르는 피. 간신히 내민 얼굴과 손.
길게 쓸랬더니 자취가 커서 그리하긴 힘들다. 그래도 이것만은 말해야 쓰겠다. 제일 무서운 것은 관객이었다. 강두가 뇌...뭐라하더라, 뇌 척수액인가 (뇌가 낡아서 이런다 =_=; )아무튼 채취를 당하는 장면에서 난 그 장면을 보는 순간부터 마취도 없이 사람 머리를 쨀 것임에 소름 끼쳐하는데 사람들은 키득키득 한참을 웃더라. 강두가 비굴하게 애원하고 우스꽝스럽게 호소하는 동안 계속 웃더라. 나중에 가서 욕을 하니 웃음소리를 더더욱 커졌고, 마침내 드릴이 돌아가고서야 사람들이 물끼얹은듯 조용해졌다.
난 강두가 바로 이런 일을 당한 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 순간 제일 무서운 것은 관객이었다. 제일 무서웠다. 정말로 끔찍하게. 감독은 대체 뭘 원해서 그 장면을 넣었던 걸까. 영화 전체에서 제일 끔찍한 장면 중 하나였다.
그래, 아버지 말씀이 맞지. 그 괴물이 아무리 불쌍한 것이라 해도, 사람 고기 맛을 본 놈은 살려두는 게 아니다. 식인 호랑이, 식인 사자, 식인 늑대, 식인 상어, 사람을 실수로라도 물어죽인 개, 모두 어떤 사정이 있어도 없애버리는 것은, 아무리 동물보호를 외친대도 생태계에서 우리가 맨손 맨몸으로 우리의 약함을 알아버린 것 앞에 서는 일을 피하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가족을 잃었다고 복수를 아니해서야 말이 안 되지 않는가. 아이는 잃었지만 그들의 복수는 아름다웠다. 여기서, 나만 그렇게 착각하는건지는 몰라도(웃음)
그래, 원래 이 나라에서 뭔가 해내려면 총보다는 화염병이었지. 언젠가부터.
나도 가족엔 약하다. 부모님 생각하니 눈물 핑 돌더라. 그래, 난 부모님은 지킬 수 없을지도 모르지. 나부터 살기 바쁠 거야. 무엇보다도, 두 분이 그걸 원하실 테니까. 날 잃고 사시느니 당신들이 먼저 가시겠지. 하지만, 두 분이 먼저 가시면 무슨 일이 있어도 복수는 할 거야. 이 영화가 왜 칸에서 기립박수를 받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꼭 그거라곤 할 수 없어도, 복수는, 심판은, 이뤄지게 되어 있는 법이지. 정의가 인정하는 유일한 피의 카타르시스 아니던가. 설령 그것이 불행한 기형이 대상이라 해도, 생태계는 삶과 죽음의 투쟁이고, 괴물의 죽음은 그러니까 꼭 필요한 것이지.
덧 : 중간에 빗물을 마셨던 괴물, 나중엔 신나를 받아마셨다. 아마 신나를 위한 장치였겠지만, 기이했다. 강에서 태어난 놈이 정작 저를 낳은 강물은 마시지 않는다는 것, 신나도 물도 못 알아먹는 놈이 어쨌건 수분을 외부에서 취한다는 것이 참으로 서글프지 않은가. 그리고 우리는 오늘 그 물을 마신다.
덧덧 : 현서는 아름다운 아이였다. 난 외동이고, 그래서 형제애라는 것이 무엇인가는 모른다. 나에게 가족은 어머니와 아버지와 삼촌 외삼촌 고모 이모뿐이다. 하지만 현서가 왜 그 아이를 지키기 위해 그리까지 했는지는 알 것 같았다. 형은 왜 동생을 돌보며 목숨 걸고 매점 서리를 했겠는가. 6.25때의 고아들이건 꽃제비건 어린 늪사자무리건 어린 것들조차 똘똘 뭉쳐 서로를 돌보는 것이 생명의 본능중 하나다. 그리고 현서는, 게다가 강했다. 그 집안에서 가장 크게 될 아이라고, 혹은 아이였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