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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잡담 |
2006/03/2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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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능력이 없어서, 손으로는 슥슥 그릴 수 있어도 컴으로는 그림을 제대로 그리지 못한다. 양해해 달라- 나는 96 학번이었고, 당시 "포토샵이라는 것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페인터도 아니고 -_-; )은 내겐 너무말도 안되는 엄청난 스킬이었다. 게다가 페인터가 등장한 뒤에도, "타블렛"이라는 것이 내 발길을 가로막았고, 난 고집스럽게 손으로 그리기를 고수했다.
문제는 지금 내 방에서는 절대 손으로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것이고, 내가 그림을 제대로 그린지는 5년이 넘어간다는 사실이다. 간혹 소설의 삽화를 그리는 정도 외엔 그림을 맘먹고 그린 일이 없다.
이런 변명과 한탄이야 어땠건, 그렇다. 분한 것은 "지금 머리속에 떠오른 광경"을 어딘가에 "글 아닌 것"으로 풀어놓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그릴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은 극에 달한다. 특히 한때는 그것을 70% 정도라도 풀어놓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5%도 안될 것임을 아니 더더욱 그렇다.
이런 경우 "저 한 컷" 자체는 글로 옮기면 매우 짧고, 사실 난 그런 삽화풍의 글쓰기를 이글루스를 통해 했었다. 지금 그래서 깨닫게 된 것은 - 글들의 길이가 지나치게 짧아졌다는 것이다. 즉, 이야기 자체의 호흡이 짧아져 버린 것인데, 이것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이야기꾼은 글이 짧건 길건 기, 승, 전, 결을 맞춰야 한다. 그런데 요즈음의 난 기, 승을 빼놓고 결정적인 전, 결 부분에서 그것도 한 장면만 끌어내는 짓을 해 버리고 있었다. 이것은 분명 재미있지만, 이러한 글들은 앞뒤가 잘려있으니 그 상황이 갖게 되는 무게를 읽는 사람이 알아서 자기도 모르게 설정할 수밖에 없고, 그런 의미에서는 읽는 사람에게 기대고 있는 비겁한 글이기도 한 것이다.
사실 난 지금 그런 것을 그리고 싶었다. 모 님의 짧고 강렬한 멋진 글을 본 뒤 문득 지나간 풍경이다. 해변을 우산을 든 검은 옷의 여인이 걷고 있고, 그녀의 남편은 그녀가 있는 곳에 막 도착해 여인에게 다가가는 중이다. 처음 멀리서 보았을 때에는 혼자라고 생각했던 여인 옆에 검은 옷의 남자가 서서 같이 걷고 있다.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는지는 알 수 없고, 아무튼 다가가는데 갑자기 남자가 공기 중으로 투명하게 섞여 사라져 버린다. 여자는 미동하지 않고 걸어간다. 마치 그런 남자는 아예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남편은 그 남자의 이야기를 묻고 싶었지만 자신의 기척에 돌아보는 여성의 무덤덤한 - 약간은 짜증이 나 있는 - 얼굴과, 그녀의 아무렇지도 않은 여상한 기척을 보고, 그리고 그녀 옆의 모래바닥에 어떤 발자국도 없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입을 다물어 버린다. 본능적으로 그 이야기를 해서 좋을 게 없다는걸 알아버렸기 때문에.
영상으로 떠올랐기에 위의 장면들은 정말 간절하게 그림으로 그리고 싶다. 무엇보다도 글이 되면 너무 짧고 내용이 없게 되기 십상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원하는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정말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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