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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잡담 | 2006/03/20 23:24
만 28세, 한국 나이로 30세.

나 자신을 봐도, 주변을 봐도. 이 나이가 되면 슬슬 느껴지는 게 있습니다.

뭐 어른이 됐다 그런 건 아니에요. 내 생각에 난 아직 저언혀 전혀 어른이 아닙니다. 전 그냥 애에요, 철도 없고 막나가죠. 그냥 아주 간단하게, 꿈에 대한 얘기일 뿐입니다.

이쯤 되면 슬슬 왠만해서는 (아주 독특한 경우가 아닌 다음에야) 자신이 갖고 있던 것, 갖고 싶던 것에 대해서 그 길을 가고 있는지 아닌지, 앞으로 할 건지 아닌지가 결정되는 거죠.

국민학교때에 전 과학자가 되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만화에 빠져버렸어요. 원래부터 '이야기'를 좋아했던 전 그림으로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금방 매료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때 전 만화가가 되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대학교때 문득 깨달아 버렸어요. 만화를 그리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빛나는 것. 데뷔해서 열심히 그림 그리는 사람들의 얼굴에 어려있는 것, 그분들이 그렇게 삽질하고 공들여서, 자신의 이야기를 고치고 또 고쳐가며 계속 그리고 또 그리게 만드는 것. 그 "무엇"이 제게는 없었어요.

단순한 열정 같은 것과는 다른 거였습니다. 전 그걸 "끼"라고 불렀는데, 연예인의 끼 같은 것과도 좀 다르긴 해요. 아무튼 "그것"이 없다고 깨달아 버린 순간, 전 펜을 던졌습니다. 1999년 이후, 전 그림으로는 책을 낸 적 없습니다.

그리고 전 역사에 빠졌습니다. 대학때 전공이었던 생물학도 좋았지만, 거기인생을 걸고 해 나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역사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그 곳은 제가 가고싶은 곳이었고 뼈를 묻고 싶었던 곳이었어요. 하지만 가정이 제 발을 붙들었습니다. 당시의 저로서는 도저히 논문을 쓸 수 없었죠. 아니, 정확히는 대학원도 무척 무리해서 다닌 것이었습니다.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당시 제 꿈은(웃음) 역사 전공과 함께 글을 쓰는 거였죠. 글은 예전부터 좋아했고, 처음으로 '창작물'이라 불릴 수 있는 - 하지만 어딜 생각해도 엉망인 - 글을 내놓은 것은 고2때의 일이었으니까요.

역사 전공은 끝났어요. (어깨 으쓱) 지금도 많이 좋아하고, 역사 전공 덕분에 얻은 것은 일생 함께 갈 소중한 자산이며, 거기서 배운 여러가지 것들이 너무 소중해서 절대 그 시간들은 버릴 수 없습니다. 나름 이래저래 힘들긴 했지만 아무튼 배우고 싶은 것을 마음껏 배웠던 정말 멋진 나날이었고, 그 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때 겪었던 고민을 다시 다 겪는다 해도 좋으니 돌아가서 다시 배워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정도로 그 땐 좋았어요.

그 뒤 전 입에 풀칠하기 위해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며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 혹은, 일은 재미있으되 꿈이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확실히 배우기도 했습니다.

분명히 말하는데, 돈이 없어서 덩어리 쿠키를 하나 사서 갉고 죽어라 물로 배를 불리고 조금이라도 양을 늘리기 위해 컵라면을 지나치게 불려먹으면서 역사를 배웠던 때가, 회사에서 꼬박꼬박 식사가 나오고, 한달에 두번 정도는 아웃백에 가면서 지냈던 '그 시절'보다 월등히 행복했습니다.

지금 제 위치는 - 그래요, 적어도 전 제가 하고 싶던 일과 연결된 일을 하고 있고, 그 일은 나름의 고민을 안고 있지만 즐겁습니다. 계속 이 일을 하고 싶은 것은 물론이고, 정말 잘 해보고 싶어요. 후회없이 "난 정말 최선을 다 했다!" 고 스스로 전부를 걸고 달려가 말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답답한 것도 있습니다, 우울한 일도 있습니다. 하지만 계속하고 싶습니다. 지금 전, 제가 갖고 있던 꿈을 이룬 적은 없지만, 적어도 달려가는 선상에 있어요. 스스로를 거기 놓기 위해 모험을 했고, 다행히 시작은 좋았습니다. 물론 시작이 좋았다고 해서 다 좋을 순 없어요. 틀림없이 언젠가 전 후회할 겁니다. 돌아볼 거에요. "하고 싶은 일 하며 사니 행복해?" 라는 질문에 맞닥뜨려서 순간 창백해질 날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30의 저는 조금, 예감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 갖다주는 고통은 시련일 뿐, 절망이 아니에요.

쓰고 쓰고 또 쓸 겁니다. 고치고 고치고 또 고쳐나갈 겁니다. 잠시 후회한 뒤에는 고개를 휘휘 젓고 다시 달려갈 겁니다. 주저앉는 일이 없는 사람이란 인간이아니죠. 누구건 달려가다 보면 주저앉아서 쉬어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서 또 나아가는 겁니다.

전 늘 선택했고, 조금 후회했고, 하지만 많이 뿌듯해 했어요. 그리고 또다시 기가막힌 실수들을 해 가며(..어이) 앞으로 가는 겁니다.

이 글은 사실, 이전부터 계속 좋아하던 미스터 칠드런의 "쿠루미"에 바치는 글이라고 할 수 있어요. 비웃음도 사고, 사실 별로 이룬 것도 없고, 앞으로도 얼마나 이룰지 알 수 없어요. 지금이 시작이니까, 나중에 60은 넘어야 뭔가 결론이 조금씩 나오겠죠. 전 그때가 올때까지 계속 걸어갈 겁니다. 분명 그 하중에 톱니바퀴는 삐걱이며 돌아갈 거에요. 어쩌면 지나보니 단추를 잘못 끼울지도 몰라요. 그리고, 변하는 것이 의외로 없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상상해 봐요.

메인 스타디움의 2만 관중을 열광시키지 않아도, 그들의 밴드는 최고인걸요.

언제나 배고프게, 언제나 바보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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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루 2006/03/21 01:50 L R X
언니... ㅠㅠ 언젠가 그 날이, 그 순간이 오리라 믿어요. 한 번을 태어나서, 한 번의 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아름답고 찬란하게 빛나는 날이 오리라고. 비록 빛나는 그 순간, 그 때인지 모른다 하더라도. 그것이 상처투성이 가시밭길을 걸어가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하늘의 선물이리라 생각해요. 길을 걷고 있는 언니는 결코 혼자가 아니어요.
황금숲토끼 2006/03/21 08:27 L X
응, 다른 건 몰라도, 길을 걷고 있는 난 길을 걷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방량을 보고 있지. 홀로 선 둘이가 마주본다 하던가. 역시 그 시는 국민학교 고학년때 접한 이후로 내 보물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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