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습니까."
"완전히 회복됐어. 원래부터도 3주 진단이었고, 지금은 한달이 넘었다고 티에리아. 두달은 무리야."
이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티에리아는 들은체도 하지 않았다.
"눈도?"
"응, 다행히 구할 수 있었어. 안구소실이 사실 가장 큰 부상이었다고. 늑골이라던가 전체 부상은 이미 회복됐고, 각 신체 기능 및 맥박 혈압 호흡수, 각종 바이탈사인도 완벽해. 자, 보라니까!"
3주면 되는 환자를 6주나 집어넣어 놓고도 티에리아는 만족스럽지 않다는 듯 이안에게 환자의 용태를 묻고 또 물었다. 반복되는 질문에 견디다 못해 차트 디스플레이를 떠올리자, 날카로운 붉은 눈이 차트를 훑어내린다.
"그렇군요, 회복되었군요."
"그래, 오히려 너무 오래 있으면 근육이 약화될 수 있다고. 그러니까 이젠 깨울 때가 됐다는 얘기야."
"...알겠습니다. 완전히 회복된 것으로 알겠습니다."
그제서야 떨어진 인정에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고, 깊이 잠들어 있던 남자를 깨우기 위해 버튼을 눌렀다. 깊은 수면, 사실상 마취 상태에 달해있던 환자가 깨어나는 광경을 바라보며 티에리아는 이를 악물었다.
재생캡슐에 들어가 있는 동안 환자는 일종의 마취 상태에 놓이게 된다. 말 그대로 꿈 없는 잠을 자는 것이나 마찬가지랄까. 꿈 없는 잠이 늘 그렇듯, 의식없는 순간은 그저 순간으로 지나가고 잠시 눈 감았다 뜨는 사이로밖에 인식되지 않는다. 5년 전부터 지금까지의 순간이 닐에게 있어서는 한순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사실 5년의 시간이 지났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분명 필사의 한 방을 사셰스가 탄 쓰로네에 박아넣고 떨어져내리던 중 유폭에 휩쓸릴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눈부신 빛이 온 몸을 둘러싸더니 상냥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닐, 닐?]
"...나...죽은 건가..."
[닐 디란디, 당신은 이렇게 죽어선 안돼요. 제가 내기를 했기 때문에 당신은 살아야 해요.]
"...너....뭐야......"
[나는 위대한 대 우주의 의지. 계약에 따라 당신을 5년 뒤의 세계로 보내드리겠어요.]
꽤나 구시대적인 안드로메다인지 우리은하인지가 눈에 아른거리더니 다음 순간 알 수 없는 거대 우주선 안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그렇다. 아마 '5년'이라는 말의 의미를 처음 깨달았던 것은 분명 세츠나임에 틀림없지만 자신이 알던 꼬마와는 전혀 다른 청년의 얼굴을 보았을 때였으리라. 좀더 성숙해진 느낌의 알렐루야도 그렇다. 티에리아는 전혀 변하지 않았었고, 그리고...
자신의 눈이 이상한 게 아니라면, 분명 라일 디란디라고밖에 할 수 없는 남자가 거기 있었다.
적어도 CB가 자신과 똑같은 인조인간이라도 만들어낸 게 아니라면 말이지.
그렇게 5년 전으로부터 시간을 뛰어넘어 지금에 도달해 마침내 의식을 되찾은 1대 록온 스트라토스, 닐 디란디의 눈에 가장 먼저 띈 것은 티에리아의 이상한 옷차림이었다.
"의식이 돌아왔습니까?"
"어...티에리아...맞지? 그 괴상한 옷은 뭐야?"
"...록온 스트라토스, 아니, 닐 디란디. 절 알아볼 수 있습니까?"
"그거야 물론이지. 잠시만...움직일 수 있나 모르겠네..."
천천히 팔을 들어올리자 의외로 통증이나 어색함 없이 순순히 딸려올라온다. 허리에 힘을 주고 몸을 일으키자, 역시 갓 회복된 몸이라 그런가 약간 움직임이 어색했다. 하지만 기능에 이상이 없는 건 확실했다.
"확실히 눈도 돌아왔군요."
그제서야 오른쪽 눈이 멀쩡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닐은 손을 들어 눈꺼풀을 만져보았다. 눈꺼풀과 안의 안구 모두 무사하다. 믿겨지지 않아 헛웃음이 나왔다. 분명 얼마 전만 해도 죽어가는 몸이었는데 완전히 회복된 것이다. 다리에 천천히 힘을 주고 일어나 주먹을 가볍게 쥐었다 펴 보이며 닐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컨디션 백프로라고 하긴 뭐해도 완전히 돌아온 건 틀림없어."
"정말로요?"
날카롭게 추궁하듯 확인하는 티에리아를, 닐은 의아함을 담아 바라보았다.
"응, 일단 아픈 데도 없고."
반쯤은 보여주기 위해 부러 발을 굴러본다.
"다리도 팔도, 늑골도 전부 멀쩡한걸."
"그렇군요, 완전히 회복되었군요."
감출 생각도 하지 않고 노골적으로 안도의 숨을 쉬는 걸 보니 걱정을 많이 했나 보다.
"왠 걱정을 그렇게 해, 별로 그럴...!"
'별로 그럴 필요는 없어'라고 말하려 했지만 끝까지 잇질 못했던 것은, 각도 경로 힘 모두에 있어 완벽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펀치가 배에 작렬했기 때문이었다. 원래 닐 디란디의 전투 실력이라면 반사적으로라도 방어동작을 취했겠지만, 아무런 움직임 없이 가만히 누워 6주를 보낸 몸은 그렇게 호락호락 듯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도, 펀치가 날아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는 점이 치명적이었다. 혼신의 일격에 그대로 무릎을 꿇은 닐이 경악한 눈으로 쳐다본 끝에서, 티에리아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찬찬히 주먹을 다시 쥐고 있었다.
"완전히 회복되었다면 거리낄 것이 없군요."
"어이...티, 티에리아?"
"각오하십시오. 암호코드를 억지로 풀고 혼자 가서 그렇게 개죽음 했던 값은 톡톡히 쳐 드리겠습니다."
"무, 무슨 얘기야, 내가 죽으러 간 것도 아닌데!"
"그 상황에서!"
사정없이 얼굴을 후려쳐 버리는 바람에 1대 록온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쓰러진 채 잠시동안 타격의 데미지를 눅이느라 배를 안고 끙끙대는 모습을 바라보며 티에리아는 가차없이 그를 책망했다.
"그 상황에서 출격하는 건 그저 무모한 자살행위였습니다!"
"하지만 쓰로네가 나온 이상!"
"그 놈의 쓰로네!"
한쪽 무릎을 꿇은 티에리아가 멱살을 잡고 끌어올리자 억울함 가득한 초록빛 눈동자가 이 쪽을 향한다. 동생의 그것과는 다른, 5년간 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영원히 볼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던 그 눈동자다. 새파랗게 날선, 그럼에도 부드러운, 그리고 이제서야 보이듯 치기어린. 그 눈동자를 마주 바라보는 붉은 눈동자에는 분노와 통한이 뒤죽박죽 뒤섞여 끓어오르고 있다.
"티에리아! 록온?!"
티에리아와 눈을 마주하고 있던 닐은 간신히 속으로만 안도했다. 이 정도로 소란을 부렸으면 반응이 없을 수야 없지. 간신히 문이 열리고 알렐루야가 뛰어들어왔다.
"알렐루야, 이 녀석 좀 말려줘. 대체 티에리아가 왜,"
"당신은 왜 살 생각 따위 하지 않았던 겁니까!"
날카롭게 터져나온 티에리아의 일갈에 어느덧 한쪽 턱이 부어오르기 시작한 얼굴이 서느라니 굳었다.
"CB의 대의가! 우리가! 당신을 필요로 하고 있었는데! 나는-"
"...티에리아."
"나는- 우리는 당신이 필요했어, 록온 스트라토스!"
다시 한번 매서운 펀치가 공기를 갈랐다. 다른 쪽 턱도 분명 얼마 뒤면 처참히 부어오르리라. 록온은 이를 악물고 - 그나마 이가 나가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하며 - 그간 티에리아의 체술에 대해 내려왔던 평가를 확실히 교정했다. 분명 기계에 능할 뿐 육박전에서 강한 타입은 아니었는데 알렐루야와 특훈이라도 한 것일까. 그 대우주의 의지인가뭔가의 설명에 따르면 자신은 원래는 죽어버렸다고 하니, 분명 이렇게 화낼만도 하겠지만-
그래도 갓 회복해서 쌩쌩하게나왔는데 이 펀치는 너무하지 않은가. 이 쪽은 반격할 힘도 없는데!
"알렐루야...도와줘..."
그나마 원래 막역한 사이였고 이런 폭력사태는 별로 좋아하지않는 알렐루야라면 티에리아를 말려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간신히 구원 요청을 했으나,
"음, 확실히 티에리아가 심하네요. 그러니 전 안 때릴게요."
제법 상냥한 표정으로, 그러나 개운하다는 듯 말하는 알렐루야를 보며, 록온은 절망했다. 두 번 절망했다.
- 너희들, 언제 이렇게 팀플레이 좋아진 거야!
"염려 말아요. 때릴만큼 때리고 나면 하루 정도만 재생캡슐에 들어가 있으면 될 겁니다. 뼈는 안 건드릴 테니."
다시 한번 조명발에 티에리아의 안경이 번쩍 빛났고, 록온은 등 뒤로 천천히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