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떻게?
용서해 줘.
-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거야?!
잘못했어, 용서해 줘. 아니, 아니...죽어, 버려.
- 네가...어......떻게...
죽어버려, 그대로 죽어버리라고. 죽어버리란 말이야!
- 살......ㄹ..................
죽어! 죽으란 말야! 죽어! 죽어! 죽어!!!
알렐루야는 번쩍 눈을 뜨고 일어났다.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공포에 질린 눈으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아직 날이 다 밝지 않아 파르스름한 새벽빛이 격자창을 지나 벽에 희미하게 비치고 있었고, 그 벽에 그려진 화려한 색조의 그림이, 방금 전까지 누워 있던 편안한 침구가, 머리맡에 놓인 도자기 물병이 이 곳이 '그 곳'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간신히 가쁘게 차올랐던 호흡이 가라앉았고, 조용히 눈을 감으며 알렐루야는 생각했다.
됐어. 여긴 거기가 아니야. 다시는 그럴 필요 없어.
간신히 안정하고 있는데, 갑자기 머리가 깨질듯 아파 온다. 그와 함께, 환상이라고하기에는 너무나 명징한, 소름끼치는 잔인함과 난폭함을 가득 담은 목소리가 우렁 우렁 울린다.
[참 편리하게 사는구나, 정말로 다시는 그럴 필요가 없을까?]
알렐루야는 공포에 질려 양 팔로 자신의 몸을 꼭 끌어안았다. 고개를 저으며 방금 들었던 '악마'의 계시를 거부했다. 다시는 그럴 필요가 없다. 다시는 그럴 필요가 없어야 한다. 어떤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신하들은 간혹 술탄이 왕자의 방에서 나온 형제를 지나치게 아낀다고 생각했지만, 감히 그것을 입에 담아 자신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자는 없었다. 그들 중 몇몇은 그것을 무시해도 좋을 일로 치부했고, 극히 일부는 형제에 대한 애틋한 정이라며 역시 술탄이라 해도 인간은 인간이라고 안쓰러워했다. 그리고 몇몇은 드디어 저 고까운 작자에게서 '약점'이 발견되었다고 생각했다.
정이란 허점이다. 누군가를 아낀다는 것은 그를 가까이 하는 동안 마음을 놓는다는 뜻이며, 즉 방심한다는 뜻이며, 그렇기에 그 때야말로 흉계를 꾸미기에는 아주 좋은 순간이 된다는 의미이지 않는가. 게다가 소란 이브라힘이 형제를 죽이지 않았기에, 이제 선대 술탄의 피를 이은 자, 누구의 이의 없이 이 나라의 옥좌에 앉을 수 있는 자가 둘이 된 것이니, '그들'로서는 천재일우의 기회라 아니할 수 없다.
술렁술렁 퍼진 정보는 격자무늬 창 너머를 잽싸게 넘나들었고, 은밀한 눈짓과 신호 속에 서서히 무언가가 준비되어갔다. 이브라힘의 성미는 선대 바예지드 못지 않다. 만일 무엇 하나라도 잘못되어 실패한다면 그 업화는 암살자와 그 뒷배경 뿐 아니라 그 외 수많은 사람들에게까지 미치고도 남을 것이었다. 그래서 올가미는 아주 서서히 좁혀들어갔다. 이 거대하고 잔인한 사냥감을 확실히 잡아죽이기 위해서.
소란은 조용히 수면을 바라보며 그 위에 어려 흔들리는 등불빛을 감상하고 있었다. 알렐루야와 함께 오아시스를 보기 위해 밤마실을 다녀온 지도 꽤 되었지만 마치 그 대신이라는 듯, 이렇게 밤이 되면 홀연히 소수의 궁인들과 함께 연못 가에 앉아 한동안 묵묵히 앉아있다 가곤 하는 것이다. 알렐루야는 늘 대동한 채였으며, 가끔은 알렐루야와 대화를 나누기도 했고 가끔은 그저 아무 말 없이 연못 위에 어린 달빛만 감상하다 들어가곤 했다. 오늘의 경우 술탄의 입은 굳게 다물려 있었고, 알렐루야도 그에 따라 그저 조용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런 둘의 그림자 사이로 흘러가는 것은 그저 궁궐 담을 어떻게인지 넘어들어온 밤바람 뿐이었다.
"알렐루야."
"예."
대답하며 가볍게 고개를 돌린 알렐루야에게 술탄의 침착한 목소리가 질문해 왔다.
"저 그림자는 무엇 같으냐."
주변의 궁인들이 잠시 그 '그림자'가 무엇인가 가늠해 보느라 술렁였지만 알렐루야는 일체의 동요 없이, 마치 술탄이 이런 질문을 할 줄 알았다는 듯 태연히 대답했다.
"모릅니다. 하지만 쇠냄새가 나요."
"내게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다."
"분명히 쇠냄새인걸요."
여전히 확고한 고집을 담은 목소리다. 술탄은 주위를 한번 가볍게 둘러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물러가라."
처음엔 자신들이 들은 명령에 대해 잠시 머뭇대던 궁녀와 내관들이었으나, 술탄 근처에 서 있던 내시장이 고개짓을 하자 다들 조용히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잠시 후 구석에서 "어머!" 하고 놀라는 한 궁녀의 목소리가 들어왔으며, 곧이어 터진 여인의 비명소리에 뜰의 정적은 완전히 깨져 버렸다. 알렐루야의 말 그대로 드디어 밤바람에 쇠냄새 비슷한 것이 섞여들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는 피냄새였지만.
"알렐루야! 내 곁으로 와라!"
뒤에 선 청년에게는 무기가 없다. 그 사실을 인지한 소란은 곧바로 허리의 칼을 뽑으며 외쳤다. 검은 옷자락이 바로 곁에 자리한 것을 확인하고서야 빈틈없이 검을 휘두른다. 원래부터도 가볍게 휘두르는 것만으로 두터운 인간의 목을 단숨에 날려버리던 솜씨다.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괴한들의 수는 대여섯 정도로 생각보다 많았지만, 술탄의 붉은 옷자락이 휘날리는 곳마다 확실히 피보라가 일고 있었다. 물론 그의 체구는 덤벼드는 괴한들에 비하면 월등히 작다. 기본적으로는 매우 불리한 조건이지만 개개의 싸움을 길게 끌지 않고, 고작해야 2-3격 이내에 급소를 베어 목숨을 앗는 것으로 체력의 낭비를 막고 최대한 버틴다면 어떻게든 버텨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양 옆에서 찔러들어오는 칼을 피해 한 발 물리고, 거의 동시에 검을 쳐 내려 한 놈의 목을 날렸다. 피보라를 피하며 재차 찔러오는 다른 녀석의 칼날을 어슷하게 받아쳐 허점을 만들어 내고 안으로 파고들어 급소를 찌른다. 발을 배에 대호 빼내며 돌아서는데 알렐루야에게 달려드는 사람 그림자가 보였다.
"알렐루야!"
은빛 검날이 번득였지만 그 자리에 검은 그림자는 없었다. 가볍게 물러선 알렐루야는 그대로 손을 뻗었고, 공격자가 물러설 틈 따위는 없었다. 직후,
"...!"
비명이 울렸다. 긴 손가락이 그대로 안구를 파열시키며 밀려들어간다. 경악하는 술탄의 눈앞에서 안구 안쪽을 그러쥔 손이 비명을 울리는 상대를 끌어당겨 그대로 목을 꺾었다. 우두둑 소리와 함께 경련하며 늘어진 상대를 놓지 않고 그대로 휘둘러 짓쳐들어오던 검을 시체로 막는다.
사람의 몸을 완전히 관통한 검은, 아직 덜 죽은 근육이 경직해 버리는 바람에 죽은 몸에 물려 잘 빠져 나오지 않는다. 두어개의 검이 시체를 관통했고, 알렐루야는 그 시체를 놈들 쪽으로 던져버렸다. 일반적인 인간의 힘을 아득히 넘는 그 공격에 두엇이 시체 밑에 깔려 버둥거렸다.
"알렐루야?"
"시끄러, 꼬마야."
달빛을 받은 얼굴에서 빛나는 것은 평소와 같은 은회색 눈이 아니었다. 마치 짐승의 것과도 같은 금색 눈이 오싹한 표정으로 이 쪽을 바라본다.
"넌 대체..."
"닥치고 목숨이나 붙여놓고 있어!"
긴 팔이 뻗어나간다. 정원의 덤불 속에서 무장한 그림자가 대여섯 더 나타났지만 검은 그림자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그 중 하나의 팔을 쥔다. 잡자마자 그대로 비틀어올려 우두둑 소리가 나도록 꺾어버리고 비명을 지르는 상대의 눈을 다시 찔러들어가 뜯어낸다.
"머저리같은 새끼들, 느려!"
손에 묻은 안구를 떨어내고 이제는 무력화된 상대를 적 편으로 밀어넣는다. 고통과 공포로 공황상태가 된 자객은 눈먼 채 그나마 성한 손으로 칼을 뽑아 무참히 휘둘렀고, 암살자들은 자기 편이 휘두르는 칼날을 피할 처지가 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자는 동요하는 다른 녀석 하나에게 달려간다. 그 움직임은 결코 암살자의 공격에서 목숨을 건지기 위해 방어하는 자의 것이라고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적을 사냥하는 야수라고 봐야 옳을 것이다.
이제는 반쯤 공포에 질려 칼을 휘둘러 대는 걸 마치 가지고 마치 고양이가 쥐 가지고 놀듯 재빨리 몸을 놀려 피하더니, 완전히 피에 젖은 주먹을 뻗어 턱을 제대로 후려갈긴다. 부러진 이빨이 공중에 튀는데 그에 그치지 않고 그대로 손을 턱에 밀어넣고는
"깨물 힘도 없냐?"
대응할 틈도 없이 우득 소리와 함께 턱을 빼 버렸다. 입을 다물지 못하고 절규하던 암살자는 곧 배에 자기 칼이 꽂힌 채 절명했고, 그 옆에 서 있던 또다른 녀석은 이번에는 경악에서 풀려난 술탄의 손에 목이 달아났다.
"후퇴!"
그 말을 한 녀석은 죽은 자의 허리춤에서 알렐루야가 던진 칼에 어깨를 관통당해 벽에 "박혀"버렸고, 비실비실 도망가려던 나머지 암살자들은 그자의 눈앞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해야 했다. 일부는 술탄의 칼날에 목이 달아났고, 일부는 차라리 깔끔하게 목에서 피를 쏟으며 쓰러진 자들을 부러워할 만치 끔찍하게 죽어갔다. 일부는 역시 눈을 잃은 뒤 목이 부러졌고, 일부는 팔다리가 부러진 채 부서진 갈빗대에 폐를 찔려 절명했으며, 몇몇은 자신의 창자를 눈으로 바라보며 비명을 질러야만 했다.
"야, 아프냐? 엉? 아파?"
한창 창자가 쏟아진 배를 부여안고 비명을 지르던 병사에게 알렐루야가 묻는다. 고개를 비뚜름하니 기울이고 조소를 얼굴 가득 떠올리고는 피식 웃으며. 공포에 질린 채 비명을 지르는 얼굴에는 그러나 그 광폭한 금빛 눈을 바라볼 눈동자조차 없다.
"비켜라."
그 뒤에서 술탄이 낮게 말했지만, 남자는 들은척도 하지 않았다.
"어이, 이봐. 너희들 대체 무슨 깡으로 덤빈 거야? 엉? 엄마 보고 싶냐? 아니면 뭐야, 애인이라도? 마누라? 애?"
"비켜라, 알렐루야!"
남자는 여전히 물러서지 않을 기세였지만 직후 달려드는 검날에 번개같이 몸을 옆으로 피했다. 비명을 지르던 암살자는 결국 술탄의 칼날이 다가와 목을 날려준 뒤에야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피에 젖은 손이 술탄의 목을 향해 다가왔고, 다음 순간 술탄의 칼날이 알렐루야의 목 밑에 정확히 와 닿았다.
"뭐야 너."
"넌 누구냐."
한동안 침묵만이 흘렀다. 죽은 자들은 말이 없었고, 정원에는 아까 어깨에 칼이 꽂힌 채 기둥에 박혀버린 자가 헐떡이는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금빛 눈과 적갈색 눈이 한동안 첨예하게 서로를 탐색했고, 시선을 돌리지는 않았으되 먼저 웃음을 띠며 입을 연 것은 금빛 눈동자의 사내였다.
"글쎄? 새삼 네놈이 내 이름을 물어보니 신기하군."
"넌 누구냐."
분명 알렐루야지만 동시에 알렐루야가 아니다. 아까 이름을 부르며 곁으로 오라고 했을 때 온 자는, 그 남자는 알렐루야가 맞다. 하지만 지금 소란 이브라힘의 눈 앞에 서 있는 자는 그가 알던 "알렐루야"가 아니었다. 그 알렐루야는 비상할 정도로 감이 좋고 움직임도 빨랐지만, 적어도 이런 식으로 사람을 "찢어죽이는" 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글쎄? 꼬맹이 녀석이 감은 확실히 좋은 것 같은데, 그래. '할렐루야'님이시다."
"...할렐루야?"
남자는 피에 젖어 질척거리는 검은 옷자락을 끌며 기둥에 박힌 사내에게 다가갔다. 공포에 질린 눈을 한동안 들여다 보다가 웃으며 중얼거린다.
"이봐, 정보를 알아내는 데에는 눈 따위 필요 없지?"
복면으로 가린 얼굴이 어둠 속에서도 알아볼 수 있을만큼 새하얗게 질린다. 그렇다, 아까부터 부하들이 두 눈이 뽑혀나간 채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는 꼴을 본 까닭이다.
"이 놈, 분명 지시를 했단 말이야. 이 녀석이라면 윗선을 알지도 몰라."
"내 말에 대답해라."
"꼬맹아, 네녀석 말에 계속 대답하면 요 녀석이 다 들어요. 그러면 좋을 게 하나도 없거든? 그렇다고 귀머거리를 만들어 놓으면 쓸모가 없어질테고, 어쩔까나~"
"윗선은 내가 알아낸다."
광기에 찬 금빛 눈이 순간 번뜩 빛나며 젊은 술탄 쪽을 향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경악에 질려 뒤로 도망갈 정도의 살기가 가득 담긴 눈이었지만, 소란은 그저 고요히 그 눈빛을 맞받으며 답을 기다릴 뿐이었다.
"시발, 그 재수없는 꼰대새끼랑 표정이 똑같네 이거."
"...!"
으드득, 소리와 함께 할렐루야의 손이 움직였고, 앗 하는 사이 암살자는 목이 비정상적인 각도로 꺾인 채 바닥을 뒹구는 신세가 되었다. 마치 조롱하는 듯한 목소리가 그 뒤에 따라붙는다.
"뭐, 니가 알아서 알아낼 거라고 했으니까, 난 모른다?"
"상관없다."
다음 순간, 검끝이 다시 한번 할렐루야라 스스로를 칭한 남자의 목덜미를 향했다.
"얼레, 꼬마새끼가 죽으려고 작정을 하셨나?"
"정체를 밝혀라."
순간 정원의 달빛 아래 날카로운 광소가 울려퍼졌다.
"정체? 정체라고? 하, 꼬마야. 모르겠냐? 나도 이 녀석이고 이 녀석도 나야!"
검은 옷자락이 피냄새를 풍기며 달겨들었다. 검을 든 손목을 붙들고 얼굴을 들이밀더니 아주 나직하게 읊조리듯 말한다.
"자, 잘 살펴보라구. 네가 알던 그 겁 많고 등신같은 알렐루야가 그 안에 있을 테니까 말야."
"...알렐루야?"
"그래! 겁 많은 알렐루야님, 방구석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던 알렐루야님 말이지! 난 그 녀석이야, 아니, 오히려 내가 그 녀석의 본심에 가깝지."
믿어지지 않는 선언에 적갈색 눈동자가 크게 벌어졌다 차갑게 가라앉는다.
"넌...악령인가."
"이거 왜 이래? 현실을 받아들여. 그럼, 그 지랄맞은 방에서 그 놈이 어떻게 살아남았으리라 생각하는 거야? 그 물러터진 심성으로, 잘도 그 지옥 속을 뚫고 왔지 않아? 응? 생각해 보지 않았어?"
피 묻은 손이 소란의 턱을 감싸고, 금빛 눈동자가 한계까지 벌어진 채 히죽거리며 비웃는 기색으로 이 쪽을 응시한다. 분명 어느정도는 의아했던 것, 그러나 물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사실이 잔인하게 나열되고 있었다.
"다 죽여버렸어. 그래, 네가 본 것처럼 말야. 그 새끼들은 잠시도 이 녀석을 가만두지 않았다고. 먹을 것은 들어왔지만 놈들이 다 독식해 버렸지. 그래, 사실상 죽여버리려고 한 거야. 너무 많았거든, 다들 너무 많았어."
"...알렐루야..."
"한 피를 타고난 형제? 지랄 마, 애시당초 어미가 다른 것들은 다 적이야! 너무 좁은 곳에 같힌 쥐떼같이들 굴었지. 서로를 괴롭히고, 한도까지 몰아붙이고, 자살하면 오히려 우스워했다. 그뿐인 줄 알아? 하하, 술탄 나리, 그 잘난 귀로 듣기에 가당치도 않은 일들이 벌어졌거든?"
"...그만해라."
"그 놈이 어떻게 목숨을 부지했다고 생각해? 다 죽여버렸어, 방해되니 다 죽여버렸다고!"
한계까지 벌어진 눈은 단 한번도 깜박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눈물이 고여 반짝이고 있었지만, 이 눈물은 결코 슬픔이나 한탄으로 인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광기와 조소가 철철 뭉쳐 빚어진 것에 가까웠다. 그런 눈을 하고, '할렐루야'는 독기를 담은 채 소란의 귀에 속삭이고 있었다.
"그러니까말야, 넌 죽지 말라고. 응? 죽지 말란 말이야 병신아."
"...어째서?"
소란 이브라힘은 언제 그렇게 가까이서 말했냐는 듯 순간적으로 멀어진 검은 그림자에 대고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어 물었다. 거짓말이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눈앞의 이 남자가 말하는 것이 분명 진실일 것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단 한 명의 생존자, 단 한 명의 승리자. 분명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잔인한 폭력 속에서 살아남은 것이리라. 아무도 공존하려 하지 않았던 그 방에서.
"뭐?"
"어째서 난 죽이지 않는 거지?"
남자는 흐 하고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당연히, 네 놈이 그 새끼의 가장 강력한 보호자니까 말야."
"보호...자?"
"네 그늘 밑에 있는 게 제일 안전하거든. 우리는 둘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지금 이 놈들이 널 죽이고 날 술탄으로 옹립한다고 해도 결국 꼭두각시, 달라지는 건 없을거야. "그 녀석"의 능력으로는 나라를 다스리는 일 따위 할 수 있을리가 없잖아. 만만한 후계나 하나 만들어놓고 독살당하겠지. 그렇지?"
"...!"
"그러니 잘 부탁해, '형제'. 내가 나오지 않게 하란 말야. 응? 이 꼬락서니 또 보기 싫으면."
"......"
"아니면 네놈이라 해도 가만 두지 않을 테니까 말야. 응? 기껏 찾아낸 '형제'의 손에 뒈지고 싶진 않을 거 아냐?"
"협박하는 건가!"
"뭔 소리야? 협박이라니. 그저 사실을 말해두는 것 뿐이야. 윽, 녀석이 돌아오는군."
"......"
"그러니...잘 생각...하라고...등신...아..."
차갑게 굳어 있는 술탄 앞에서 남자가 천천히 무너진다. 돌바닥에 쓰러진 남자는 잠시 뒤, 깊은 잠에서 깨어나듯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 모습을 냉정한 눈으로 바라보는 소란 앞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그를 찾아내고는 급히 다가온다.
"괜찮으십니까."
"비켜라."
차갑게 내뱉은 말에 움찔 하더니 주위를 둘러본다. 죽음이 불러온 완전한 정적, 그리고 코를 찌르는 피냄새에 순간 손을 들어 입을 막으려다 손에 들러붙은 마른 피에 경악하는 모습을, 소란 이브라힘은 냉정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나도 남김없이, 마치 지금의 모습이 가짜인지 진짜인지 의심이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이건...이...뭡니까...왜 피가..."
"기억나지 않는 건가?"
"......기억?"
알렐루야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질려 있다. 핏기없는 얼굴에 입술을 짓물며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모습이 당장이라도 스러질 것 같이 위태로웠지만 술탄은 냉정한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모두 네가 한 일이다."
"...! 설마...설마 그가..."
"할렐루야, 다."
알렐루야의 입에서 절규가 터져나왔다. 그 이름을 견딜 수 없다는 듯, 아니, 소란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오는 것을 견딜 수 없다는 듯 외마디 절규를 외친 알렐루야는 머리를 감싸쥔 채 엎드렸다. 온 몸을 떨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온 몸을 떨며 웅크리고 앉아 오열하기 시작했다.
"안돼!...또....다신 안돼! 다신...이럴 순 없어......"
오열 사이로 띄엄띄엄 나오는 말이, 알렐루야의 경악에 거짓은 없음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술탄은 여전히 냉정한 눈으로 알렐루야를 바라보고 있었다. 충격과 안도감, 배신감이 교묘히 섞여있는 그 마음 속에서는 이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질문이 떠오르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내가 그를 믿을 수 있단 말인가?'
미친 야수를 만난 이라면 누구나 할 법한 질문이었다.
-계속